_이윽고 남미에 가게 되었을 때 지나가는 길마다 문득문득 떠 오르던 그가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일본 등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에세이집을 낸 것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_예전과는 달리 요즘의 여행기란 쓸만한 (D)SLR 카메라와 몇 줄의 감상적인 문장만으로도 누구나 책을 내는 것이라, 여행담의 진부함ㅡ유럽 야간 열차의 경험과 이탈리아의 젤라또 맛, 또는 인도에서의 고생 같은ㅡ은 둘째 치고서도 그런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진부해지는 작금이기에, 평소라면 늘 호기심을 가지고 뒤적였을 서점의 신간 코너에 쌓여 있는 색색깔의 여행기들을 지금의 나는 들춰보지도 않는다.
_말하자면, 떠남, 그리움, 자아에 대한 탐구 등등을 고향의 일상의 감옥에 갖혀 있는 인간들이 가장 배고파할만한 감정들로 잘 포장해서 비싼 값에 팔아치우는, 그런 '포장된 고상함'이 경멸스럽다는 것이다. 모든 여정이 큰 무리 없이 가능하게 된 21세기 투어리즘의 가호 아래 뱉어 놓은 자아 타령하는 글들은 어딘가 모르게 명품백을 사 놓고 니넨 이런 거 없지 하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색다른 경험말이야.'
'이런 자아의 탐구 말이야.'
'이런 생의 고민말이야.'
'인도, 티벳,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그런 싸구려 감정 분출 여행기의 대다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고.)
_하여 나의 남미에서의 여정에서 마음의 위안이었던 이가 쓴 책을 펴는 기분은 약간의 기대와 약간의 두려움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존경하던 위인의 더러운 뒷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될까봐, 또는 그 위인의 업적이 지금 생각하면 하찮기 그지 없을까봐.
_다행인 건, 그의 글에서 어떤 소설가로서의 기교는 있을지라도 그런 흔한 애수와 감상은 적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텔레비전과 스포츠, 그리고 마약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반 년 이상 파키스탄에 머무르고도 '베나지르(부토의 이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나는 지금껏 여러 명 만났다. 그렇게 오랫동안 거기서 대체 뭘 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들은 무지한 질문을 받은 현자 특유의 표정(holier-than-thou look)을 지을 뿐 별 만리 없이 잠잠하다. 하긴 티베트에서 7년간 지낸 사람 또한 거기서 뭘 했느냐는 질문에 정작 별로 할 말이 없었으리라. 중요한 것은 티베트에서 7년간 지냈다는 사실이다."
_그렇다면 도대체 왜 여행을 하는가란 질문에 그는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_투어리즘에서 정복해야 할 고지와도 같은 아프리카, 남미와 같은 이름들을 책의 앞 쪽에 몰아두고 왜 마지막 챕터는 그 아무나 간다는 일본에서 기똥찬 스시와 살살 녹는 맥주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래의 인용이 담긴 에필로그를 보고서야 이해가 갔다.
"행복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하고 다른 사람은 이혼을 한다. 저금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불륜을 저지르거나, 혹은 보톡스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_여행 또한 로또를 사고 직장을 구하고 술 먹고 싸우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많은 선택 중에 그저 여행을 선택한다는 점 뿐이다. 그간 많은 여행기가 자아와 우수라는 성역 안에서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고 있었던 것과 다르게, 그는 이렇게 차분하게 말한다. 여행의 위상을 끌어내린다. 때문에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면 일본 도깨비 여행을 하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든 다를 바는 없다. (물론, 이렇게 쿨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더욱 chic해지는 것인지는 몰라도.)
_뱀발 약간; 그나마 자아타령을 대면할 때의 낯간지럼 없이 볼 수 있었던 여행기임에도, 표지와 본문 디자인은 사진과 그래픽, 색깔 범벅이고, 또 책 날개와 커버에는 여행욕을 자극하는 인용구가 잔뜩인데, 이런 것들은 출판사도 책 팔아 먹고살아야겠으니 이렇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