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삶의 다른 형태들, 삶의 다른 가능성들, 삶의 다른 스타일들을 인정, 하지 못한다 해도, 고려라도 할 수 있을까.
설령 설사 그것이 완전한 끝을 의미한다 해도.
_그다지 동의할 수 없는 건 그런 떠남의 선택을 아버지에 대한 증오라는, 너무나 뻔하고 싸구려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정말 McCandless가 남긴 노트 중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부정을 증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난 영화를 찍으려, 소설을 쓰려 그런 모티프를 끌어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실제로 여동생의 나레이션 말고는 그가 직접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레이션은 많지 않다. 왜냐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가 했던 선택을 (그런 연결 고리라도 없으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떤 정신병으로 치부할테니까.
_그가 그렇게 아사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삶이 계속되었을까? 그는 그렇게도 모든 삶의 레토릭들(히피, 누디스트, 자본주의 속물)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또 짧은 기간 동안은 그럴 수 있었지만, 그게 계속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까? 삶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또 하나의 부류를 형성하고, 편입되고, 그러면 또 다른 하나의 레토릭으로 진부해진 채 고착되는 건 아닐까? 아니, 이미 사회를 스스로에게서 삭제한 이에게 그런 우려는 인간이 동물의 행동을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하듯 너무나 그 상황과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_하지만 궁금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의 해맑은 웃음은 절대 죽음을 선택할 이는 아니었기에. 지금 여기 우리는 하나의 영화와 하나의 책을 대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삶이었기에; 문학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자는 것이기에. (비록 그가 삶의 준거들을 소로와 톨스토이에게서 빌려왔을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