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기독교의 전파 이전까지 세계 모든 문화권(유럽과 아시아뿐 아니라 아메리카까지)에서 '미로'의 이미지가 발견되는데, 무엇인가를 확실한 방법을 모른채 끊임 없이 탐구하며 추구해야 한다는 '미로 모티프'는 단순히 그림이나 건축물 뿐 아니라 역경-고난-성취라는 신화의 구조 속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이러한 미로는 중세 시대 때에 기독교가 미로라는 아이콘을 종교 안으로 삼켜버린 이후(중세 시대의 성당들 안에는 바닥에 미로 그림이 있는 곳이 많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이성을 중시하는 풍조와 함께 명확하지 않고 인간 이성에 반하는 미로는(또는 미로의 모티프는) 일종의 '악(알 수 없는 것, 불명확한 것, 어둠)'으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사회와 계몽주의를 지나온 이 현대에 미로는 다시 복귀하고 있으며(복잡한 생물학, 인터넷, 그리고 아마 양자역학까지도),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탐험해 본 이들만이 이러한 현재와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아탈리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미로'라는 일종의 '무지, 알 수 없음'을 상징하는 단어에 '지혜로 이르는 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유이다. (불어 제목 Chemins de Sagesse-Traité du Labyrinthe는 직역하면 '지혜의 길 - 미로에서의 여정(stretch of road 또는 journey라는 뜻의 'traité')'이므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로 안에서 헤매는 것이 바로 지혜로 이를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일 것이다.)
"실상 '길을 잃는다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뒤로 물러나 예상치 않았던 곳으로 가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이다. 심지어 헤매는 걸 '원하기도' 해야 하며, 길을 잃는 데서 기쁨을 얻어야 하고, 통과하는 것을 싸움으로 여기지 말고 호기심을 갖고 기대해야 한다.
방황이나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음 번 갈림길을 지나서 적이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더라도 일단 전진하고 보아야 한다. 과학에서 방황하는 일이 없다면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예술에서는 길을 잃는다는 것이 창조의 조건이다. 학습에 있어서는 실패가 없다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길을 잃는 걸 좋아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특별한 덕목을 가정한다. 바로 '호기심'이다. 이것으로 인해 방황중에 깨닫게 되고, 미지의 세계에서 찾게 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나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들에게 단번에 자신의 길을 강요하려 하지 말고, 사소한 차이라도 세심하게 살펴야 하며, 낯선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_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한국의 2009년이란 꽤나 애매한 시기이다. 모든 것이 불명확해지는 것은 맞지만,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명확한 것에 몰린다. 고용 보장이 안 되는 이 시기에는 전문직과 공무원이 최고이다. 부동산은 불패한다. 그 정해진 트랙을 벗어난 이들 중 소수는 아탈리가 말하는 미로의 출구를 찾은, 일종의 새 시대의 사람이 되겠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어떤 '전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중 대다수는 미로에서 헤매는 훈련을 해 보거나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또 그렇다고, 저 '명확한 것들'의 기반이 예전처럼 단단한 것이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명확한 것'을 위한 input에 비해 outcome의 '크기'는 크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outcome에 대한 '확실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 않나 싶다.
_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문제는 '무게'인지 모른다. 가벼워져야smart 한다. 덜 원할 줄을 알아야 하고, 선뜻 발을 내 딛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실패의 충격을 최소화하되, 여러 번 실패를 겪어야 한다.
"현대인은 고독이 지닌 화려함을 잊었다...고독은 현대인에게 실패이며, 죽음 직전에 도달하는 최후의 단계이고, 또한 자살을 당연시하고 정당화시키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고독은 여행의 동반자이다. 방랑자는 고독을 용인하고 그것을 즐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을 견뎌내야 한다."
_어쩌면 화려하게 고독해질 수 있는 것(세상에나, 고독이 사실은 '화려한 것'이라고!), 즉 고독해지는 것에 자신있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무게를 그만큼 줄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인 삶에선,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남아있는 삶의 시간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하여, 부디 제발 젊음을 낭비하지 말자. 그리고 무엇을 하든 재미는 있자.
"유목민은 '경쾌해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