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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이따금씩 어쩌면 예술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동물적이라 할, 순수하고 즐거운 활동. '진짜 화가처럼 야수적' '그는 새가 노래하듯 그림을 그린다' 같은 말들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일단 죽음의 문제를 초월하고 나면 예술이란 이렇게 돼버리는 것이 아닐까."

"예술가라는 것, 그것은 그에게 무엇보다도 순응하는 누군가가 되는 것이었다. 예측 불허의 불가해한 메시지에 순응하는 것. 모든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제외한다면 부득불 직관이라는 말로밖에 칭할 수 없는 이 메시지는, 삶의 모든 원칙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는 빠져나갈 방도가 전혀 없는 단호하고도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이 메시지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방향을 틀기 위해 한 작품을, 아니 나아가 한 시기의 작품 전체를 모조리 파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때로는 심지어 아무런 노선도, 대책도, 기약도 없이 작품을 파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고 오직 이런 점 때문에 예술가의 처지가 '어렵다'고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실 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연대감이 아주 희박하오……."

"삶은 때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만, 너무 비겁하거나 우유부단해서 그 기회를 덥석 움켜잡지 못하면 이내 거두어가버린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순간이. 그 순간은 며칠 동안, 때로는 몇 주 혹은 몇 달 이상 지속된다. 대신 인생에 정말 단 한 번, 꼭 한 번뿐이다. 나중에 아무리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려 해도 불가능하다. 더이상 열정과 신뢰와 믿음을 위한 자리는 없고, 희미한 체념과 서로를 향한 서글픈 연민과 뭔가 일어날 수도 있었으리라는 적확하고 무의미한 감정만이 남을 뿐, 우리에게 주어졌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만 증명한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엘벡은 소설가로서의 이력을 반추하며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늘 메모하고 문장들을 늘어놓아볼 수는 있지만, 소설을 쓰려면 이 모든 것이 촘촘해지고 노니박의 여지가 없게 될 때까지, 필연이라는 진정한 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서 소설은 절대 소설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책은 굳기를 스스로 결정하는 콘크리트 블록과도 같아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거기 그렇게 존재하며 무기력한 번민 속에서 책이 저절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1889년 에든버러 컨퍼런스에서 (윌리엄 모리스가) 한 연설이요. -요컨대 이것이 예술가로서의 우리 입장입니다. 우리는 상업적 생산 시스템에 치명적 타격을 입은 수공업의 마지막 대표자들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 위에 올라서 있었고, 개 역시 인간에게 길들여진 이래로 자연 위에 올라섰다는 것이 그의 깊은 속내였다. 비록 그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화장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불경스럽게 여겨졌다."


_게으른 내가 모든 저작을 읽은 작가는 우엘벡 뿐이다. <소립자>와 <어느 섬의 가능성>은 속편이라 할 정도로 관통하는 것이 있었고, <플랫폼>과 <투쟁 영역의 확장>은 앞의 두 소설에서 나오는 중요 테마를 확장한 것 같은 외전 같은 책이었는데, 이 책은 앞 책들의 흐름을 뒤트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혼란스럽게 한다. 이 혼란스럽다는 것이, 단순히 한 작가의 문학적 노선의 혼선이 헷갈리는 정도의 표현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은 어느 새인가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의 로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_어떠한 평론도 이 책을 정확하고 통합되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들 지금까지 우엘벡이 열거했던 많은 주제들을 한꺼번에 녹였다고만 하지, 전체가, 아니면 각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제대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책에 같이 실려있는 역자의 평론으론 세상에 대한 우엘벡의 시선이 '따뜻해졌다'라고 하지만, 그건 또 전혀 아닌 것 같다.

_인류에 대한 동질감이나 희망을 별로 갖지 못하고 있는 그가, 현존 인류를 포기하고 새로운 신인류를 가정하는  <어느 섬의 가능성>과 같은 세계관, 이 나는 이 소설에서도 다시 나타날 줄 알았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며 끝을 달려갈수록 나는 어떤 파괴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인데, 끝은, 어떤 대단한 격변 없이 인류는 또다른 번영을 구가하는 것으로 끝난다.

_우엘벡이 과거의 소설에서 말해왔던 인류의 마지막 또는 희망 없음에 대한 맥락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아버지의 안락사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 소설 속 우엘벡을 죽인 외과의가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시도했던 갖가지 인간형상들(책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굉장히 단촐하게 하고 있지만 이것이 전해주는 의미는 그의 전작들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테마에 대한 상징 중 간접적인 것들로는, 소설 속 우엘벡이 아일랜드에서 살던 몰골의 모습, 또는 주인공 제드가 노년에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것 등일 것이다.

_전작의 소설들에서 새로운 인류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실험을 거쳐 급기야 그 많은 단점을 지닌 현존 인류를 포기하고 신인류로 재탄생(또는 멸종)하는 것에 성공한다는 내용들이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또는 절망)'이라는 모습으로 나왔다면, 이 소설에서는 그런 시도는 한 외과의가 지하실에서 자기 맘대로 키메라들을 만드는 한 싸이코패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그 외과의는 소설 속의 미셸 우엘벡(그렇게 인간의 마지막에 대한글을 써왔던)을 완전한 난도질 끝에 죽이는 것으로 나온다. 이것만으로 작가가 과거의 노선에서 큰 선회를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_인류의 종말이라는 테마를 포기한 작가가 그리는 미래란 어찌보면 유토피아적이다. 20세기 초의 금융 딸꾹질은 그냥 잠깐의 우려로 그치고, 도시가 농촌으로 전파되는 현대적 현상 아래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는 모습이다.

_결국에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제드가 노년에 하던 작업들의 테마일텐데, 전자 기판들에 황산을 서서히 부으며 녹는 모습을 조용한 숲의 모습에 겹쳐 보여 준 작품들은 분명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라는, 공空 사상에 가까운 무엇일 것이다. 이는 서양 회화의 바니타스적 이미지들과는 다른, 좀 더 불교적인 어떤 것이다. 인류의 영속을 부정하면서도 현대의 모습의 지속을 용인했다는 점은, 나로서는 굉장히 무책임하면서도 대중 야합적인 세계관으로도 보여진다. 소설 속 우엘벡은 아일랜드에서 괴물 같은 몰골로 지내다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개도 기르고 건강도 되찾고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게' 된다. 그 또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소한 애정과 caring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괴퍅함인지는 몰라도 그런 행복한 삶을 구가하는 자신을 갈기갈기 난도질을 하여 살해당하도록 만든다.

_새로운 인류가 나타나리라는 것도 unlikely하지만, 우엘벡이 인간의 애정 속에서 이상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것도 unlikely하다.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공쿠르상 수상을 위한(수상했다) 꼼수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그러면서도 책의 후반 제드가 만든 작품들을 묘사한 글을 읽으며 그의 작품들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왜인지 제대로 설명할 순 없지만 꽤나 마음을 편하게 한다.


_지금 카페가 닫는 시간인지라 미처 쓰지  못한 테마들; 그가 도시에 대비되는 시골을 바라보는 관점, glocalization과 계속되는 '토착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 그건 왜였을까?

그리고, 윌리엄 모리스와 제드의 아버지가 그렸던 건물들의 청사진들, 그리고 우엘벡이 고향으로 이사 오고 나서 썼던 글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살해당하기 전까지 썼던 글들. 아마도 자본주의와 산업시대가 아닌 새로운 삶의 체계에 대한 구상이었던 것 같은데, 윌리엄 모리스를 비롯하여 20세기 초에 실패한 이 '시도들의 시도'에 대한 언급들은 계속해서 나오다가, 결국 어떠한 확연한 결과 없이 소설은 끝난다.

이 윌리엄 모리스와 토착적 삶을 통해서 그가 흔치 않게 중요한 무엇으로 강조했던 것이라면, 직업의 소명 의식, 나의 식으로 풀자면 어떤 craftmanship이다. 우엘벡은 이것만이 이윤을 삶의 동기로 삼는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라고 (흘려가며) 언급하고 있으며, 책 마지막의 미래의 모습(2040~50경이다)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또한 나름의 삶을 구축하고는 생이 flourish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엔, 그가 정확히 인간 사회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아도, 삶은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으로' 지속되었다고 말해주고 있고, 그것은 아마도 이 craftmanship에서 나왔을 공산이 크다.

_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년의 제드의 작품들이 모두 oblivion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 복선을 보면, 우엘벡의 떨칠 수 없는 염세성, 이 느껴지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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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5 22:50 2011/10/25 22:50

나가사키


나가사키

"그 모든 시간 동안 제가 확신을 갖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분명 이것이었지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의미가 선재(先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의미라는 생각은 인간이 자신을 불안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인데, 인간은 의미 찾기에 사로잡혀 혼미해졌죠. 그런데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어떤 '위대한 주관자'도 없어요. 이 확신이 제게 현기증을 안기는 날에는 이따금 내 앞에다 물건들을, 내가 떨어질 수 없었던 추억의 물건들을 펼쳐놓을 필요가 있었지요. 그 물건들에서 어떤 구원을 기다려서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그 물건들에서는 창백하고 차가운 빛이 꼭 우주의 '바탕색'처럼 풍어져 나왔지요. 더구나 그 빛은 별의 광채와도 이어져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 사진들에 자리한 얼굴들이 대개는 떠난 사람들의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우주의 '바탕색'이란 건, 불어 원문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주 배경 복사'의 오역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모든 헌법에 누구나 자신의 먼 과거의 장소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불가침의 권리를 집어넣어야 할 거라고 저는 혼자 생각했지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모든 아파트와 단독주택과 정원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 꾸러미를 맡겨서 이 추억의 겨울 왕궁에서 몇 시간이고 머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런 시간의 순례를 새 집주인들이 막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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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1:22 2011/05/20 01:22

Oracle Bones

Oracle Bones
Peter Hessler

_베이징에서 기사 스크랩부터 시작해 저널리스트 생활을 한 피터 해슬러가 2000년대 초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가 추적한 갑골문 학자들 이야기와 묘하게 엮인다.

_저자가 취재한, 갑골문 학자들이 겪었던 20세기 초 중국 험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저자가 2000년대 초의 중국 생활 속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묘하게도 어떤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갑골문으로 대변되는 한자, 그리고 그것이 중국인들에게 의미하는 바와 대만, 신장, 북경, 심천의 이야기들...또한.

_인류학에 몸 담기도 했던 작가의 전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곳곳에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볼 때의 어떤 차분하고도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 '따뜻한 시선'이라는 것은 어쩌면 '의도와 편견이 없는' 시선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옥스퍼드를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무작정 중국으로 건너간 그이기 때문에, 그렇게 스스로를 비워낸 이이기 때문에 그런 시선이 가능한 것 아닐까.

_소위, "longitudinal narrative non-fiction", 종단적 서술형 넌픽션, 여러 시대의 실제 이야기들을 일관성있게 엮음. 이런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일상의 자잘한 단편이라도 과거과 미래 사이에서 연관되어 맞춰지는 퍼즐 조각들이 있어, 그것 역시 어떤 세상을 조직하는 일부로 만들어준다. 물론, 그런 조합을 할 수 있는 통찰과 집요함은 또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 toto's treat, 3개월만에 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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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4 03:31 2010/03/04 03:31


패스포트 - From Gobi to Siberia
김경주 산문집

_뻔하디 뻔한 여행의 감상을 이쁘장한 사진 옆에 보기 좋게 모아 놓은 흔하디 흔한 요즘의 여행기(라기보다는, 그저 싸이월드 사진첩 모음에 다름 아닌 것처럼 보이는)들이 이제는 물릴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한 행 한 행 읽어내릴 때마다 가슴을 파랗게 물들였던 시를 쓴 시인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밤의 한가운데로 그 사전들의 체온들을 분류하면서 죽은 자들의 사전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것은 글을 쓰는 동안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눈이었다. 눈은 언어의 한가운데 춤추는 사람들이 떠다니는 것이다.

_'여행기'가 아니라 '산문집'이라 이름 붙여 놓은 책에 어떤 세세한 기록이나 플롯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쓴다는 것과 '산문'을 쓴다는 것의 차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위의 문장들처럼, 문장 하나 하나는 아름답디 아름다워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을 정도지만, 그런 문장들을 잔뜩 모아놓았을 때엔 글 자체를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장마다 새로운 '선언'을 계속하는 글들은, '산문'이라는 이름을 달기엔 너무나 비유와 감정의 과잉인지라, 읽다가 조금은 질려버릴 정도였다.

_시인이라는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법과 어휘를 고르는 방법이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 많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그저 내가 이런 정도의 감성을 소화해내기에는 너무 메말랐으며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그렇게 각자는 너무나 이쁜, 하지만 잔뜩 쌓여 있는 그 화려한 문장들을 보며 조금은 뭐랄까, 너무나 예쁜 얼굴에 꼴 사나운 진한 화장을 한 여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_흔하디 흔한 요즘의 여행기들에서 내가 싫어했던 건 그 숱한 '트렌디한 일갈'이다. 모아 놓으면 예뻐보일 수 밖에 없는 엑조틱한 사진들에 과잉 감성으로 터질듯한 문장들. 마치 나는 이 정도로 고상하고 너희들은 속물일 뿐이라는 은근한 무시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내 워크맨 속 갠지스 같은 시를 쓴 그의 문장들은 분명 그런 싸구려 문장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단단하며, 심지어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서러울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배치하는 방법과 그 문장들을 읽을 때의 느낌에 대해 고려해봤어야 하지 않나 싶다. 때문에, 저자가 책에 싣기도 한 조연호 시인의 편지글에서처럼, "읽기는 쓰기보다 뒤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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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22:48 2009/11/25 22:48

Diary
Chuck Palahniuk

_The main theme:

Maybe people have to really suffer before they can risk doing what the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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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0 20:30 2009/11/20 20:30

The Soloist


...그는 음악에 취해, 뭐랄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그걸 뭐라고 하지?...
...은총(grace)이요...

Prayer is the study of Art.
Praise is the Practice of Art.
Fasting &c., all relate to Art.
You must leave Fathers & Mothers & Houses & Lands if they stand in the way of Art.

-William Blake

_나는 참 어리석게도, 20세기 전까지의 많은 이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예술을 통해 신을 떠올리는지, 예술과 신이 갖고 있는 접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고양-은총-신
이러한 도식은 희귀해지고 이젠 오직 '개인의 광기(천재성)'만이 예술의 신화를 쓴다.


_은총을 접한다는 그 느낌, 에 대해 영화는 더 많이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 단순히 자비와 계층이 갖는 복잡함들에 대해서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물론 그게 은총을 논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도 재미있기 때문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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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9 14:12 2009/11/19 14:12


쥬네빠르떵, 드 뻬더 라 떼뜨...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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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6 12:14 2009/11/06 12:14

 
오 나의 잉글리시 보이
왕강

_이념과 역사가 소용돌이 쳐도, 소년은 커간다, 다른 그 여느 곳의 아이들과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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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5 02:13 2009/10/25 02:13

여행일기

여행일기


내 일생에 처음으로 내가 완전한 심리적 붕괴 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견뎌내었던 이 힘든 균형이 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너져버렸다. 나의 내부는 어렴풋한 형체들이 지나가고 나의 에너지가 용해되어버린 푸르스름한 물 같다. 이 의기소침은 어느 면에서 지옥이다. 만일 이곳에서 나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내가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느꼈다면 적어도 미소쯤은 띠어줄 수 있었을텐데.

저녁마다 그렇게 하고 싶다. 내면적인 것은 아무것도 쓰지 말고, 그냥 있었던 사건들만 어느 것 하나 잊지 말고 다 적어볼 생각이다. 내가 버려둔 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지만 그래도 나는 잠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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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0 00:59 2009/10/20 00:59

검모 : Gummo


_redneck들에 대한 조소? 보다는, 그들에 대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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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8 17:51 2009/10/18 17:51

지하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를 기만하고 괴롭혔던가? 그 대답은 - 멍청히 팔짱을 끼고 있기가 너무나 따분해서 약간 재주를 부려본 것뿐이다, 라고 나올 것이다. 사실 그렇다. 당신들도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해 보라. 사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니.

_A to B가, 합리성이, 과연 인간에게 가능하기나 한 말인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든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하고 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대되더라도 하고 싶은 걸 어쩌겠는가...(중략)...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의욕, 아무리 엉뚱한 것일지라도 하여튼 자기 자신의 변덕, 미치광이 같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여튼 자기 자신의 공상 -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유익한 이익이다. 이것만은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이익이며 또 이것 때문에 일체의 이론이 박살나 버리는 것이다...(중략)...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독자적인 자유로운 의욕뿐이다. 이 자유로운 의욕의 대가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리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참으로 이 의욕만큼 처치 곤란한 것도 다시 없을 것이다.

_포디즘이 실패한 이유.

설사 인간이 정말로 피아노의 건반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자연과학으로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뭔가 이상야릇한 일을 저지를 것이다. 요컨대 단순히 배은망덕의 습성 때문에 자기를 주장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만약에 적당한 방법이 없을 때는, 파괴와 혼돈과 온갖 고통을 궁리해 내서라도 하여튼 자아를 주장할 것이다. 그 때 인간은 온 세계에 저주를 뿌릴 것이다. 저주라는 건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능력이므로(이것이야말로 특권이자,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 주는 특징이다), 아마 이 저주 하나만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즉, 자기는 피아노의 건반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것이다.

_종교, 체계화된systematic 인간의 저주 능력.

사실 온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지상의 목적이란 것은, 모두가 이 목적 획득의 끊임없는 과정, 즉 생활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목적 자체 속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목적이란 말할 것도 없이, 2X2는 4이며 공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러분, 2X2는 4는 이미 생활이 아니고 죽음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_전쟁이 멈추고, 기아가 없어지고, 모든 이들이 부자가 된다면? 인간에게 있어 '목적'이 갖는 공허함, 로또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이유이다.

나는 확신한다 - 인간은 진짜 고통을, 다시 말해서 파괴와 혼돈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고. 고통 - 이것이야말로 자의식의 유일한 원인인 것이다. 나는 이 수기의 첫머리에서 자의식은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러나 인간이 그 불행을 사랑하여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자의식이란 2x2는 4 따위보다는 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2x2는 4 다음엔 두말할 것 없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질뿐더러 더 이상 알아야 할 것도 없다. 그때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자기의 오감을 틀어막고 명상에 잠기는 것밖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의식을 지니고 있으면, 결과적으론 역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지기는 해도, 하다 못해 이따금 자기 자신을 때릴 수는 있을 것이고, 따라서 다소는 제정신이 들 게 아닌가. 좀 퇴보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_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병이 고질화되어, 진짜 '산 생활'을 마치 무슨 힘든 노동이나 되는 것처럼 느끼며, 차라리 '소설식인' 생활 쪽이 좋다고 모두들 속으로 생각하게끔 되어버린 것이다.

_우리는 이제 완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 삶은 재미없고 지루하며 빡세다. TV와 영화의 삶에는 '드라마'가있고,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실제 삶보다 '우월'하다, 고 생각을, 이제는 모두가, 한다.

시험삼아 우리에게도 좀 독립성을 부여하고, 우리 손에서 밧줄을 풀어 활동 범위를 넓혀줘 보라. 그렇게 하면 우리는 곧...... 그전처럼 다시 감독해 주십사, 하고 애원할 것임이 틀림없다. 아마 당신들은 나의 이 말에 화를 내어 발을 구르며 호통을 칠 것이다 - "너 자신의 얘기만 해라. 너 자신의 비참한 지하생활 얘기만 하면 될 것이지 어째서 '우리는 모두들'이라고 남까지 끌고 들어가느냐?"

_누구에게 제대로 말 못하는, 21세기의 모든 히키코모리 저리가라할만큼, 찌질한 주인공임에도, 너희 그 잘난 세상의 모든 '제대로 된 정신'이 박힌 인간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당차게 말하며 '수기'를 맺는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는 '모두들'이란 말을 변명의 도구로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 자신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나는 일생 동안 줄곧 당신들이 반도 추구할 용기가 없었던 것을 극단까지 추구한 것뿐이다. 당신들은 자신의 소심함을 분별력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그것으로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들에 비하면 오히려 내가 몇 배나 더 생기 있다고 할 수 있다. 눈을 좀더 크게 뜨고 잘 보라! 사실 지금 어디에 살아서 생활하는 것이 있는가? 그 살아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뭐라고 불리우고 있는가? 그것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잖은가? 가령 우리한테서 책(그가 이 글을 쓰던 시대에는 책이었겠지만, 지금은 좀 다른 것들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TV, 컴퓨터, dmb, 핸드폰...)이라는 걸 모조리 빼앗아보라. 우리는 곧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디에서 자신을 맞춰야 할지, 무엇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할지, 모든 것이 캄캄해져 버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조차 - '자기 자신'의 육체와 피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조차 싫증이 나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로 생각하면서, 뭔가 여태까지 없었던 일반적인 인간이 되려고 열심히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테면 생명 없는 사산아, 그것도 살아 있는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것이 아닌, 몇 대에 걸친 사산아인 것이다.

_<Facto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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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22:04 2009/10/16 22:04

티베트 방랑

티베트 방랑
후지와라 신야

_ 후지와라 신야는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땅인 인도와 티베트를 다니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이이다. 그럼에도 그는 티베트 땅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8년간 지내던 인도에서도 티베트와 그곳의 영성spirituality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탓인지, 그는 티베트의 불교와 그곳의 승려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분명 지금의 현대인들이 티베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것이었다.

_실제로 그가 티베트로 가서 확인한 모습은, 조금은 어이가 없다. 티베트의 사원들은 대개 대지주라 승려들은 고기만 없다뿐이지 호위호식 하며, 언제나 무료해 견딜 수 없어한다. 그들은 하루에 수십잔씩 차를 마시는 것으로 속세인들이 알콜과 담배에 가지고 있는 어떤 욕망을 대체한다. 속세인들이라고 다를 바는 없어서, 그들의 작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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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21:47 2009/10/16 21:47

인도 방랑


인도 방랑
후지와라 신야

_'모든 것을 버리고 인도로 떠났다'라는 진술은 작금의 출판계에선 너무나도 흔한 카피가 되어버렸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인도와 티벳은 실패한 히피들의 자위를 통해 그렇게 고평가되어 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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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7 21:10 2009/10/07 21:10

황천의 개


황천의 개
후지와라 신야

_사진가이자 여행가인 그가 95년과 96년에 오옴진리교 사건과 그의 과거 여행 경험을 비교하며 신문에 연재한 글들.

_그가 이십대 초반 예술대학을 중퇴하고 인도로 떠난 이유는 그 자신의 몸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정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성, 리얼리티를 원했고, 그것은 인도에서 시체를 뜯어먹던 개들에게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그 때에야 정말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_말하자면 이 기호와 가상이 현실을 깡그리 뒤덮는 도시라는 곳에서는 점점 그 '리얼'이라는 것이 희미해지고 지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동물이 살아왔던 수만년 동안은 기후, 환경, 동료 모두가 어떤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었고, 그 위험들 안에서 '고통'이라는 것은 너무나 흔했던 것이며, 때문에 나라는 존재, 또는 그저 나라는 고깃덩어리는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더도 덜도 아닌 그저 고깃덩어리, 스스로를 먹여살려야 하는 고깃덩어리-이라는 것이다.

_우리는 육체적 고통이 있을 때에야 신체가 존재를 다시금 깨닫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안전하고 그 어떤 위험이나 위협으로부터 보호된 이 도시의 삶에서 그런 리얼리티는 너무나 쉽게 빛을 잃는다. 물리적 위험이 사라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신체를 대상화한다. 신체는 관리의 대상이 되고 보살핌의 대상이 된다. 신체는 '나'를 싣고 다니는 어떤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미 정신적인 존재성이 증발해버린 도시적 삶에서 육체적 존재성마저 지워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완벽한 존재의 소거, 가 아닐까 한다.

_그러한 '리얼리티의 희석'에 고통스러워 했던 것은 이십대의 후지와라 신야나 오옴진리교의 신도들이나 같았을 것이라고 하며, 그 둘 모두 어떤 해답을 찾아 인도로 떠났다. '종교'라는 이념에 전염되기를 극도로 꺼려했던 저자는 종교 없이도 어떤 현현epiphany를 겪었지만, 오옴진리교에서는 힌두교의 키치들만 잔뜩 담아오게 된다.

_그가 70년대 인도에서 목격했던 것은 실패한 68세대의 (또는 전공투 세대의) 막연한 도피였다. 좌파라는 유물론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에서 그들의 정신적 세계를 끝도 없이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공중 부양과 같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어떤 물질성을 바란다. 후지와라 신야는 그 점에 대해, 정신성과 물질성의 부조화가 가져오는 파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_사족으로, 세상의 가상성, 또는 실재성을 인지하는 다른 층위들;
하나, 후지와라 신야는 인도에서 시체 태우는 곳을 2주 동안 꼬박 구경했다. 그리고 시체를 뜯어먹던 개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뒤에야 어떤 실체성, 실재성을 찾았다.
둘, 일전에 내가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을 사흘간 지프를 타고 돌아다닌 뒤, 칠레로 넘어가는 길에 몇 일만에 처음 만나는 '포장도로'가 나오자 나와 다른 여행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 길로 열 두 시간 넘게 쉬지않고 달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라는 대도시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나는 어떤 평온함을 되찾았다.
셋, 올 여름 친구들과 한 계곡에 놀러갔을 때, 이제 열아홉살인 한 동생은 그곳이 마치 내추럴 '워터파크'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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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7 03:52 2009/10/07 03:52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_어떤 정전 또는 신화 같은 첫 권 <비밀노트 - (원제-커다란 노트 Le Grand Cahier)>
이야기가 농밀해지는 두 번째 <증거 La Preuvre>
그리고 아침드라마처럼 앞 두 권의 아름다움을 다 뒤엎고 '사연'으로 범벅을 한 세번째 권 <세번째 거짓말 Le Troisieme Mensonge>.

_원래 프랑스에서 발표되었던 것처럼 각 권들이 다른 이름을 달고 따로 발간되었다면 이렇게 세 권을 연달아 읽고 받게 되는 김빠짐을 없었을텐데.

_<증거>에서 주인공의 옆집 서점 주인은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태어나는 거라고. 무슨 책이라도. 그 무엇도 쓰지 못한다면, 그저 잊혀지게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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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6 02:17 2009/10/06 02:17

동양기행

 
동양기행
후지와라 신야


"'흑해의 물은 검다'라고 누군가에게 전보라도 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어느 먼 곳에서 이런 내용이 적힌 전보를 받아본 사람은 이 쓸데없는 전문을 통해 비밀스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뭔가 색다를 탐험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흑해의 물은 검다, 라고 알려줬을 뿐이다."

_요즘에 서점에 쏟아지는 여행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맛집멋집의 해외판인 것처럼, 현지의 다양한 재미들을 소개한 내용을 위주로 간간이 뻔한 여행 에피소드들이 섞여있는 준-가이드북(또는 화보집)들과, 다른 하나는 '여행의 서정' 또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처럼, 그저 찌질했을 뿐인 시간들을 훗날에야 멋드러진 감정들로 떡칠한, 너저분한 감정의 배설들.

_후지와라 신야의 글과 사진은, 어느 서평처럼, '즉물적'이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일 년을 넘게 터키에서 일본까지 향한 여정에는, 요즘의 트렌디 트래블러들처럼 자신을 여정에 투사하지 않는다. 마치 적외선과 가시광선이 똑 같은 빛의 종류들인 것처럼, 그에게 있어서 삶의 무늬들과 경험들은 그저 그대로 거기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부드러운 육질은 먹어본 적이 없다. 양의 동공을 맛있게 느끼는 혓바닥에 굴욕과 비슷한 감정이 쌓인다."

"바람이 불고, 거리는 냄새를 풍긴다.
거리에서는 정액 냄새가 난다.
방출되어 부패되고, 지면에 스며들고, 벽에 들러붙은 사람들의 땀, 숨, 기름, 배기가스...... 녹슨 쇠의 냄새, 불에 탄 돼지, 양의 날고기, 코를 찌르는 향신료, 잘 익은 파파야의 감미로운 냄새, 식당이 내뿜은 코코넛 오일의 탄내, 제단의 향연, 열대 여성의 화장, 남자들의 머리에서 풍기는 겨자 기름, 재스민 냄새, 썩은 강, 기름기, 대마초 연기, 가로수...... 대낮의 태양이 남긴 냄새...... 그리고 비의 냄새."

_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적인 감각의 중첩인, 그러한 '즉물성'은, 일종의 새로운 form으로, 싸구려 감정을 걸치기 힘든 어떤 무게있는 것으로, 아니, 오히려 쉽게 의식의 이해를 허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쫓아가고 싶은 어떤 '세상의 진실'처럼 다가온다. 그것이 때로는 이 보통 사람의 사회화된 의식을 굉장히 역하게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그 휘향찬란함에 넋이 빠진다.

_그리고 그러한 성취(?)는 이렇게 시지프스의 팔 근육처럼 기나긴 여정의 무딤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하여 그 즉물성의 뒤안은 어딘가 모르게 서늘하다.

"예전에 표고 4000미터의 티베트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두 번 다시 저 푸르디 푸르른 하늘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상에 내려온 뒤에도 그때의 확신은 변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하늘이 탁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티베트의 아름다운 하늘은 내 눈동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을 심어주었다. 그 얼룩 때문에 하늘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는 여행길에 마주치는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길조가 언제 악몽으로 뒤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훗날 악몽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동공을 흐릿하게 만들고, 감수성을 미련하게 해두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긴 세월 동안 쉬지 않고 여행할 수 있었던 나만의 비결이었다.

그러나 보여지는 것까지 막아낼 도리는 없다."

_'그저 이렇게 존재할 뿐인 세상'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불쑥불쑥 동요하는 감정의 너울 사이의 고요한 전쟁.

- 그의 다른 책 <황천의 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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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19:31 2009/09/28 19:31

인간 실격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_자의식의 과잉, 또는 자의식의 희박함에 시달리는 한 인간이 서서히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에 대해 L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어떤 종류의 공감을 얻는다고 했다.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한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화상을 본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것은 책에도 등장하는 '정강이에 상처 가진 몸(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뒤가 구린 일이 있다라는)'이라는 일본 속담처럼,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작동하고 있는 그 '찌질-나'를 이 이야기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아무리 자신감 충만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단단한 표정을 한참 들여다보면 드러나는 어떤 어둔 '뒷구녕'말이다.

_사족이지만, 글을 쓰려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어떤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L의 말에 나는 어떤 '문청 로망'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무절제, 방종, 타락, 고뇌,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그건 천재 이데올로기의 문학적 버전일텐데, 어쩌면 그런 로망에 대한 맹목적 신봉, 그 어떠한 이성적인 계획이나 깊이 있는 성찰 없이 그저 그러한 문청의 삶이 응당 보여주어야 할 '스타일'만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정말 문학을 하는 것인 것 마냥 생각되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 이야기는 예전보다는 훨씬 더 '코메(디)'로 읽히는 것이다. 물론, A to B를 택하는 자가 시를 쓰진 못한다. 시인 고은의 소주 이론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만 절제와 수양으로 '고뇌'를 하지 못하고 단순히 고통만을 겪을 때, 그리고 그 고통을 운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치장할 때(기실 그 고통은 습관이나 사고 방식 같은 너무 뻔하고도 우스운 원인에서 시작하는데도), 작가들은 자살이라는 마지막 방패 뒤에 숨는 것이 아닌가 한다.

_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신자유주의적이고도 과학적인, A to B 방식의 사고에서 과연 문학이란 것이 탄생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방종과 방황(또는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 어떤 문학적 찌질함? 우수?)이 문학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이냐 하는 것이다. 나는 '골목을 헤멜 수 있는 자'만이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분명 삶이 A to B로만 이뤄져 있는 이는 글을 (또는, 좋은 문학을) 쓰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반면에, 어떤 면에서 문학을 하는 이들의 삶이란 어딘가 모르게 어떤 종류의 '희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모든 생각이, 삶의 모든 면에서 단순히 기득권을 뺏기고 싶지 않으나, 그렇게 노예처럼 살기는 싫은, 어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어리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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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00:42 2009/09/28 00:42

분홍리본의 시절
권여선

_살다가, 삶의 루틴이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삶의 진동을 담아내는 것이 문학이라면, 이 소설들은 그것의 대척점에 있다; 그 모든 과거의 설렘과 드라마들과 아이러니들이 다 식어버리고 차디 찬 어떤 '현재의 주검'만이 남았을 때, 그리고 그 주검에 구더기가 잔뜩 꼬여 온 구멍으로 나올 때, 그렇게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 아니 차라리 덮어두고 싶은 과거 같은 이야기들을 문학이란 이름으로 담아낸다는 것인데,

_그것도 오감을, 특히 미각과 후각에 대한 강렬한 자극을 동원하여. 추억거리는 전혀 아니고 그렇다고 아쉽거나 또 슬픈 것도 아닌, 하지만 머릿속에서 뽑히지 않는 어떤 얼룩 같은 기억이라면 냈을 어떤 시큼하고 역한 냄새랄까. 그렇게 '구체적인 감각'과 '추상적인 현실'을 매치시킨다는 것,

_하여, 일면 '전위적'이랄까.



_다시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나는 글들, 하지만 나의 기억들을 되짚으며, 그 날, 그 밤, 그 순간의 느낌, 절대 설명되지 못하던 그 느낌이 소설들의 중간 중간에 너무나 정확하고도 확연하게 (그리고 그래서 더욱 뻔뻔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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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 21:51 2009/09/27 21:51

건투를 빈다

건투를 빈다

김어준

_한겨레 칼럼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모은 책.

_일단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기, '자기객관화'. 그게 뭐냐면, '나'라는 x축, '너'라는 y축이 있으면 제3의 시선이라는 z축 위에까지 나를 위치시키는 것. 자기객관화를 확실히 했을 때에야만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며, 어느 정도의 인간인지 가감없이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 그 이후에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하는 것. 그리고,
그렇다.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실패부터 두려워하고, 그래서 그 성공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상처 받을지 모를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일련의 사전 조치들을 취한다. 그렇게 실패하더라도 내가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는 변명부터 궁리해둔다. 그러고는 제 설득에 제가 넘어가 그냥 주저앉아 기다리기만 한다. 남들이 왜 아직도 안 하고 있냐고 물으면 너는 그 어려운 사정을 몰라서 그런다고 인상을 쓴다. 자기도 해보지 않아서 모르면서. 그러나.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다. 실패를 준비하며 핑계를 마련해두는 데 에너지를 쓸 게 아니라, 토 달지 말고, 그냥, 그 일을 하는 거, 그게 그 일을 가장 제대로 하는 법이다. 그런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되느냐.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지. 하지만 해보지도 않는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겠나. 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되길 바라는 건 멍청한 게 아니라 불쌍한 거다. 자기 인생에 스스로 사기치는 거라고. 그리하여 난 꿈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외쳐야 한다고 믿는다.
"하면, 된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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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20:29 2009/08/31 20:29


미로 - 지혜에 이르는 길
자크 아탈리
"유목민으로서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 모든 실책은 보상받을 수 있기에 모든 사람들은 살아 있는 한 희망을 지녀야 한다. 끈질기게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희망은 여행중에만 존재할 수 있다."라는 놀라운 말을 자주했다."
_기독교의 전파 이전까지 세계 모든 문화권(유럽과 아시아뿐 아니라 아메리카까지)에서 '미로'의 이미지가 발견되는데, 무엇인가를 확실한 방법을 모른채 끊임 없이 탐구하며 추구해야 한다는 '미로 모티프'는 단순히 그림이나 건축물 뿐 아니라 역경-고난-성취라는 신화의 구조 속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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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01:23 2009/08/12 01:23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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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0 02:05 2009/08/10 02:05

타타르로 가는 길
로버트 카플란
타타르로 가는 길

_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누구나 어떤 지리적인 '의식의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나의 의식이 인지하고 있는 영역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약간은 심리적인 것이어서, 단순히 이성적으로 지구의 위도 경도 어디쯤에 시에라리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과는 약간 다른 차원의 말인데, 어쩌면 그것은 그 지역, 사람들, 등등에 대해 얼마나 'empathetic' 해질 수 있느냐는 말이며, 아마도 그걸 가장 쉽게 아는 방법은, 나 같은 경우엔, 머릿 속에서 세계 지도를 떠올리고는 익숙한 지역들을 찬찬히 짚다가 어디쯤에서 끝나는 가(또는 어디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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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0 01:30 2009/08/10 01:30

The Wackness

The Wackness
Jonathan Levine

_예고편과 실제 영화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영화는 저 트레일러보다는 훨씬 진지하다. 모든 것이 처음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드럭 딜러 Luke, 모든 것이 다 지겨운 정신과 의사 Jeff. 그리고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둘의 조합이 만드는 flow. 그 지독한 일상성의 절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검은 우주, 또는 바람 한 점 없는 무풍 지대의 바다 같은 그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권태에 못 이겨 스스로를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에 대해 영화는 말을 하고 있다. 시종일관 참으로 시니컬한 유머 감각을 유지하며.

_배경은 1994년 뉴욕이다.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던 그 대단한 뉴욕의 80~90년대, 줄리아니가 처음 시장이 된 이후이다. 아직 21세기와 어떤 연속성을 진하게 갖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분명 90년대는 (서구권 국가들에게 있어) 무언가 문화적으로 풍요로웠던 시기였는데, 그 때를 추억하는 영화는 많지 않지만, 그 중의 하나이다.

_변화란 한 걸음 한 걸음씩 차근차근. Remember the 'baby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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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5 09:29 2009/08/05 09:29

Bottle Rocket

Bottle Rocket
Wes Anderson

_(갓) 어른이 되었다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라도 한다. 그들이 택한 것은 도둑질이다. 그리고 그런 젊음의 증면 과정들이 늘 그렇듯, 어떤 뒤틀림 속에서 끝을 맞이한다. 도둑질은 제대로 되는 일 없이 실패로 돌아가고, 사랑 또한 어그러진다. 썰렁한 유머와 어리숙한 캐릭터들 속에서 그 어떠한 '악다구니'도 느껴지지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약간은 이 영화가 슬프다. 엉엉 울어댈 수 있는 좌절이나 슬픔조차 없는 시시한 젊음의 발버둥, 하지만 우리네가 그렇게 살아간다, 삶에는 드라마가 흔치 않다.

_Wes Anderson의 첫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이로써 그의 영화를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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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5 09:13 2009/08/05 09:13


Great to see again those smooth alleys.

And also, Sabzi's smooth style,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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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9:37 2009/08/03 09:37

여행할 권리

여행할 권리
김연수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은 내게 되려 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_다소 무겁고도 진중한 <청춘의 문장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작가의 타지의 경험들을 담은 이 책은 비교적 경쾌하고도 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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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17:38 2009/07/27 17:38


지중해 오디세이
Mediterranean Winter: The Pleasures of History and Landscape in Tunisia, Sicily, Dalmatia, and Greece
로버트 카플란 Robert Kaplan

"설령 실수를 한다 해도 그것을 바로잡을 시간이 늘 있기에 우리가 시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그 시절. 정당화해야 할 일들이 쌓이기 전 가능성은 한없이 많은 그 시절의 느낌을 어떻게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_<타타르로 가는 길>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이 대학 졸업 후 1975~6년 겨울에 1000달러짜리 여행자 수표 하나만 들고 지중해를 찾았던 이야기이다. 중동 지방의 정세를 담은 <타타르로 가는 길> 첫 몇 챕터를 읽다가 그의 젊은 시절 여행담이 나왔다는 걸 알고, <타타르...>는 미뤄둔채 찾아 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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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21:15 2009/07/23 21:15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_젊음을 회고하는 요즘의 많은 글들은 몇 세에 뭐를 깨치고 몇 세에 뭐를 이뤘다는 둥 지 잘난척 일색이지만(마침표를 찍지 않겠다는 그 어이 없는 책을 포함해), 이렇게 고요하면서도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나의 이십대가 필요한 글이란 이런 책일지 모른다. 이리도 독성 강한 나의 청춘에 그의 글들을 읽을 때면 난 다행히도 어떤 차분한 위안을 느꼈다는 것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그렇게 할 일이 없을 줄 몰랐다'라며, 동네가 여자의 음부를 닮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정릉 쪽방의 기억들이 그의 삶에서 빛났던 순간이라는 이야기, 또 하염 없이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컴퓨터에 입력한 이야기 등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비루한 나의 작금마저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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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8 04:12 2009/07/18 04:12



Encounters at the End of the World
베르너 헤어조그Werner Herzog

_Screenshot; 펭귄들이 먹이를 찾아 바다로 향하는 시기에 저렇게 혼자 산으로 향하는 펭귄이 있다고 한다. 굶어 죽을 것이 뻔한 저 산으로 말이다. 잠시 방향 감각을 잃은 것일까? 하지만 저런 펭귄은 다시 무리로 데려다 놓아도 곧 또 산으로 몇 일이고 걸어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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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8 01:48 2009/07/18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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