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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록

_사소한 기록들을 해야지. 트위터에만 맘을 뺐겼더니 내 말도 타인의 말이 되고 타인의 말도 내 것 같고 시선을 얽혀있고 정신 없었는데, 이리 글을 끄적이니 좋구나. 안온하니.

_벌써 2월이네. 2012년은 언제나 그렇게 실재하지 않아 보였는데, 이렇게 2012를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surreal 하면서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_작년에 끄적이는 노트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 여름부터 시작해서 주말의 금, 토 이틀을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getting wasted 되었었다는 것. 밤을 사랑하는 친구를 새기고, 이렇게 저렇게 음악과 술과 춤이 있는 곳을 전전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chronic disorder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 습관들을 나는 어떤 실험이라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그 곳에 어떤 답이 보일지도 모른다며, 마치 하나의 ritual, 주말에 드리는 예배처럼 대했던건가, 사실 그런 건 없어. 그저 반복되는 쾌락과 금욕의 뫼비우스의 띠가 아닐까. 허나 재밌는 건, 그 많은 에너지와 돈을 소모했는데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_그 disorder가 끝났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우습다. Cioran이 말한 것처럼, "숱한 밤을 혈관 속에 담고 있는 네가 인간들 사이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서커스장 한가운데 놓여 있는 묘비 정도"라고, 아침이 오면 정말 부끄러워 죽겠어, 죽겠어.

_세들어 사는 이 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이게 내가 그렇게 모든 정력을 쏟아 이룩하려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비단 집과 물건들과 가구들 뿐만이 아니라, 이런 라이프스타일말이야. 이제는 거창한 담론도 대단한 욕심도 지독한 서정도 과거도 기억도 그 어느 하나 내 흥미를 끄는 것이 없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 드디어 현재와 나 만이 남았지만, 나는 현재와 나에게 전혀 집중하지 않아. 그저 흘러가는 것들만. 내 몸의 체액들과 주말-주중의 걸음만 빨라.

_그렇게 한참 생각을 하다보면, 이렇게 생각 없이 엮이는 것 없이 미련도 후회도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 만을 바래왔나, 하여 어쩌면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의 궤적을 이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중의 출근들이 있지만, 물질 세계에 발을 붙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의무라고 생각해. 그 외에는 별로, 뭐. 그저 유일하게 소망하는 것이라면, 이 욕망의 충족/재생의 계속되길 바래. 언제나 싹을 잘라버릴 정도로 마시고 춤추고 wasted되는 이 욕망의 차오름이 멈추지 않길 바래. 허나 그 또한 불가하겠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하여 욕망이라는 예수의 아버지인 죽음만을 믿게 되는걸까.

_작년엔 이십대가 끝난다는 걸출한 핑계가 있었고, 이리도 비현실적인 2012를 살면서 이제 와 들이미는 핑계는 겨울이 가고 봄이 와야한다는 거야. 실제로도 정말로도 나는 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그 때가 되고 흐붐한 햇살과 나긋한 공기에 취해 좋다고 또 지랄을 하다 보면, 지나버린 겨울에 그 칩거와 은거가 가능했던 시간에 조금 나를 주워담을 걸 그랬다 하고 생각할지도 몰라. 허나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고 있지? 그저 너 겨울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며 주말마다 꽁꽁 싸매며 밤거리를 헤메기만, 이러기만, 이런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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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00:58 2012/02/07 00:58

Merry Christmas

이교도의 명절을 비난만 하던 요 몇 일이지만, 그래도 다 가기 전에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 인사, 신년 인사 같이 진부하고 매 년 똑같은 반복도 없지만, 그래도 어떤 반복의 방점을 찍는 것에는 어떤 성스러움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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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5 21:47 2011/12/25 21:47

mortal

일주일 내내 나를 짓누르던 그것, 마치 나는 북극의 바다에 있고 머리 위에 커다란 얼음반을 이고 있는 것 같았지, 해가 떠도 어둠이 깔려도 그 무겁고 차가운 고체의 느낌은 가시지가 않았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 없었고. 그건 마치 진실을 폭로하는 것 같았어, 암흑 물질 같은 그것이 선반 아래, 옷장 속에, 칼 끝에,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 음흉한 진실을 목도한 이상 세계는 더 이상 예전같을 수 없었지, 그저 저음의 불안만이 두개골 속을 윙윙댔어. 어찌 반응해야 할까? 기억이 완전히 일단락 지어지는 기분, 기억이 그대로 고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 한 순간에 화석화가 되던 여러 순간들, 표정들. 그러고나니 밥을 먹고 비타민C를 넘기는 생을 지속시키려는 그 자잘하고도 숱한 노력들은 모두 거추장스러울 뿐 아니라, 이윽고 그 행위들에 어떤 경멸마저 갖게 되는 것이지; 지속, 유지, 재생 같은 것들은 모두 허구의 개념이지, 왜냐하면 지나간 모든 것들은 한 번 뿐인 것들이고, 한 번 뿐인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도 같기 때문이지. 그렇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연기의 밀도조차 갖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

그 순간에 오히려 자유를 보았고. 死者와 대화조차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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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00:01 2011/12/09 00:01

지도와 영토

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이따금씩 어쩌면 예술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동물적이라 할, 순수하고 즐거운 활동. '진짜 화가처럼 야수적' '그는 새가 노래하듯 그림을 그린다' 같은 말들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일단 죽음의 문제를 초월하고 나면 예술이란 이렇게 돼버리는 것이 아닐까."

"예술가라는 것, 그것은 그에게 무엇보다도 순응하는 누군가가 되는 것이었다. 예측 불허의 불가해한 메시지에 순응하는 것. 모든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제외한다면 부득불 직관이라는 말로밖에 칭할 수 없는 이 메시지는, 삶의 모든 원칙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는 빠져나갈 방도가 전혀 없는 단호하고도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이 메시지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방향을 틀기 위해 한 작품을, 아니 나아가 한 시기의 작품 전체를 모조리 파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때로는 심지어 아무런 노선도, 대책도, 기약도 없이 작품을 파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고 오직 이런 점 때문에 예술가의 처지가 '어렵다'고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실 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연대감이 아주 희박하오……."

"삶은 때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만, 너무 비겁하거나 우유부단해서 그 기회를 덥석 움켜잡지 못하면 이내 거두어가버린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순간이. 그 순간은 며칠 동안, 때로는 몇 주 혹은 몇 달 이상 지속된다. 대신 인생에 정말 단 한 번, 꼭 한 번뿐이다. 나중에 아무리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려 해도 불가능하다. 더이상 열정과 신뢰와 믿음을 위한 자리는 없고, 희미한 체념과 서로를 향한 서글픈 연민과 뭔가 일어날 수도 있었으리라는 적확하고 무의미한 감정만이 남을 뿐, 우리에게 주어졌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만 증명한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엘벡은 소설가로서의 이력을 반추하며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늘 메모하고 문장들을 늘어놓아볼 수는 있지만, 소설을 쓰려면 이 모든 것이 촘촘해지고 노니박의 여지가 없게 될 때까지, 필연이라는 진정한 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서 소설은 절대 소설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책은 굳기를 스스로 결정하는 콘크리트 블록과도 같아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거기 그렇게 존재하며 무기력한 번민 속에서 책이 저절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1889년 에든버러 컨퍼런스에서 (윌리엄 모리스가) 한 연설이요. -요컨대 이것이 예술가로서의 우리 입장입니다. 우리는 상업적 생산 시스템에 치명적 타격을 입은 수공업의 마지막 대표자들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 위에 올라서 있었고, 개 역시 인간에게 길들여진 이래로 자연 위에 올라섰다는 것이 그의 깊은 속내였다. 비록 그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화장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불경스럽게 여겨졌다."


_게으른 내가 모든 저작을 읽은 작가는 우엘벡 뿐이다. <소립자>와 <어느 섬의 가능성>은 속편이라 할 정도로 관통하는 것이 있었고, <플랫폼>과 <투쟁 영역의 확장>은 앞의 두 소설에서 나오는 중요 테마를 확장한 것 같은 외전 같은 책이었는데, 이 책은 앞 책들의 흐름을 뒤트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혼란스럽게 한다. 이 혼란스럽다는 것이, 단순히 한 작가의 문학적 노선의 혼선이 헷갈리는 정도의 표현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은 어느 새인가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의 로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_어떠한 평론도 이 책을 정확하고 통합되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들 지금까지 우엘벡이 열거했던 많은 주제들을 한꺼번에 녹였다고만 하지, 전체가, 아니면 각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제대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책에 같이 실려있는 역자의 평론으론 세상에 대한 우엘벡의 시선이 '따뜻해졌다'라고 하지만, 그건 또 전혀 아닌 것 같다.

_인류에 대한 동질감이나 희망을 별로 갖지 못하고 있는 그가, 현존 인류를 포기하고 새로운 신인류를 가정하는  <어느 섬의 가능성>과 같은 세계관, 이 나는 이 소설에서도 다시 나타날 줄 알았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며 끝을 달려갈수록 나는 어떤 파괴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인데, 끝은, 어떤 대단한 격변 없이 인류는 또다른 번영을 구가하는 것으로 끝난다.

_우엘벡이 과거의 소설에서 말해왔던 인류의 마지막 또는 희망 없음에 대한 맥락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아버지의 안락사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 소설 속 우엘벡을 죽인 외과의가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시도했던 갖가지 인간형상들(책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굉장히 단촐하게 하고 있지만 이것이 전해주는 의미는 그의 전작들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테마에 대한 상징 중 간접적인 것들로는, 소설 속 우엘벡이 아일랜드에서 살던 몰골의 모습, 또는 주인공 제드가 노년에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것 등일 것이다.

_전작의 소설들에서 새로운 인류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실험을 거쳐 급기야 그 많은 단점을 지닌 현존 인류를 포기하고 신인류로 재탄생(또는 멸종)하는 것에 성공한다는 내용들이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또는 절망)'이라는 모습으로 나왔다면, 이 소설에서는 그런 시도는 한 외과의가 지하실에서 자기 맘대로 키메라들을 만드는 한 싸이코패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그 외과의는 소설 속의 미셸 우엘벡(그렇게 인간의 마지막에 대한글을 써왔던)을 완전한 난도질 끝에 죽이는 것으로 나온다. 이것만으로 작가가 과거의 노선에서 큰 선회를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_인류의 종말이라는 테마를 포기한 작가가 그리는 미래란 어찌보면 유토피아적이다. 20세기 초의 금융 딸꾹질은 그냥 잠깐의 우려로 그치고, 도시가 농촌으로 전파되는 현대적 현상 아래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는 모습이다.

_결국에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제드가 노년에 하던 작업들의 테마일텐데, 전자 기판들에 황산을 서서히 부으며 녹는 모습을 조용한 숲의 모습에 겹쳐 보여 준 작품들은 분명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라는, 공空 사상에 가까운 무엇일 것이다. 이는 서양 회화의 바니타스적 이미지들과는 다른, 좀 더 불교적인 어떤 것이다. 인류의 영속을 부정하면서도 현대의 모습의 지속을 용인했다는 점은, 나로서는 굉장히 무책임하면서도 대중 야합적인 세계관으로도 보여진다. 소설 속 우엘벡은 아일랜드에서 괴물 같은 몰골로 지내다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개도 기르고 건강도 되찾고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게' 된다. 그 또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소한 애정과 caring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괴퍅함인지는 몰라도 그런 행복한 삶을 구가하는 자신을 갈기갈기 난도질을 하여 살해당하도록 만든다.

_새로운 인류가 나타나리라는 것도 unlikely하지만, 우엘벡이 인간의 애정 속에서 이상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것도 unlikely하다.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공쿠르상 수상을 위한(수상했다) 꼼수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그러면서도 책의 후반 제드가 만든 작품들을 묘사한 글을 읽으며 그의 작품들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왜인지 제대로 설명할 순 없지만 꽤나 마음을 편하게 한다.


_지금 카페가 닫는 시간인지라 미처 쓰지  못한 테마들; 그가 도시에 대비되는 시골을 바라보는 관점, glocalization과 계속되는 '토착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 그건 왜였을까?

그리고, 윌리엄 모리스와 제드의 아버지가 그렸던 건물들의 청사진들, 그리고 우엘벡이 고향으로 이사 오고 나서 썼던 글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살해당하기 전까지 썼던 글들. 아마도 자본주의와 산업시대가 아닌 새로운 삶의 체계에 대한 구상이었던 것 같은데, 윌리엄 모리스를 비롯하여 20세기 초에 실패한 이 '시도들의 시도'에 대한 언급들은 계속해서 나오다가, 결국 어떠한 확연한 결과 없이 소설은 끝난다.

이 윌리엄 모리스와 토착적 삶을 통해서 그가 흔치 않게 중요한 무엇으로 강조했던 것이라면, 직업의 소명 의식, 나의 식으로 풀자면 어떤 craftmanship이다. 우엘벡은 이것만이 이윤을 삶의 동기로 삼는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라고 (흘려가며) 언급하고 있으며, 책 마지막의 미래의 모습(2040~50경이다)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또한 나름의 삶을 구축하고는 생이 flourish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엔, 그가 정확히 인간 사회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아도, 삶은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으로' 지속되었다고 말해주고 있고, 그것은 아마도 이 craftmanship에서 나왔을 공산이 크다.

_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년의 제드의 작품들이 모두 oblivion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 복선을 보면, 우엘벡의 떨칠 수 없는 염세성, 이 느껴지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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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5 22:50 2011/10/25 22:50

소소한 소식


_이사를 했다. 2011년 7월 23일에. 나와 대출금의 힘을 합쳐 평생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좀 더 온전해진 느낌이다. 사소한 신경증 같은 것들이 사라진 느낌이다. 가족을 사랑할 수도 있게 되었고. 그 비천한 drive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 마음이 편하다.

_그렇게 방랑 유랑 사랑을 하다가 그리도 증오했던 나의 나라, 나의 도시로 돌아왔다. 그렇게 부유float했던 영혼이 뿌리를 너무 깊게 박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크다. 뿌리를 박는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가능성이나 시도들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적어도, 그 관성의 힘을 걷어차는 데에 그만큼의 에너지가 다시 들 것이라는 뜻이다. gravity is a bitch, ain't it?

_어쩌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하나의 fully wholly functional 한 존재라고 모종의 증명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타인에게, 나에게. 혼자 삶는 스파게티 보다도, 프로젝터씩이나 들여놓고 보는 미드보다도, 그 모든 amenity보다도 사실 그게 전부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삶을 오롯이 가꾸어보았으니 됐다. 여한이 없다. 음, 근데, 과연?

_어떤 식인가 중용을 닮은 중간과 오실레이션을 최소화한 일종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 어떤 적정 지점들을 찾은 것 같다.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는 단순한 생활의 루틴 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들에서도. 굳이 무리해서 많은 사람을 곁에 두려고도 하지 않고, 내가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놀라지 않게 다가가는 방법을 구상하며. 어떤 식으로인가 관심 있던 사람들과 많이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이면 내가 나를 꾸미지 않고도 마음이 편한 사람들이, 그런 부류가, 그렇게 주파수가 맞는 이들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껍다.

_여름은 어떻게 갔나? 의무적인 기록이라도 해야하지 않나; J와 여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리고 더 이상 그 virtual한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자신이나 의지가 없었고, 씁쓸하지만 마지막을 고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발로 걷어차는 사상 최악의 병신 같은 무브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들었어도, 자꾸만 거짓을 직조하는 기분은 견딜 수가 없었다.

_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자신감으로, 나는 혼자서도 오롯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두려움이 들 때마다 나는 좀 더 낮아지고 험블해지려 한다. 낮은 자의 선택에는 어떤 고귀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뭐라도 해 준다시면 다 큰 아들의 땐땐함으로 됐다고,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고마워요, 라고 실제로 말을 한다. 생활을 너무 크게 벌여놓은 것 같은 두려움은 항상 존재하지만, 생이 버겁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신경증을 삭제하면서, 또 다른 신경증을 계발하고. 그게 사는 거겠지.

_여름은 비가 많이 와서 힘들었었지만, 바삭이는 가을이 있어 좋았다. 주중이면 어둔 사무실에서, 주말이면 밤을 사느라 제대로 햇살을 피부 가득 머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나, 마셔야 할 술들이었고 피워야 할 담배들이었다. 갑자기 많이 추워진 오늘, 무언가 문이 닫혀버린 기분이긴 한데, 수면양말을 꺼내 신고 잠을 청하면 겨울의 감금이 주는 속박은 조금은 덜하지 않겠나.

_모든 휘청임들이 멈추고 status quo를 맞딱뜨리면 나는 다시금 나 자신을 괴롭히고 해할 방법을 찾겠지만, 그 전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런 뻔한 루틴성 자해보다는 조금은 발전적인 표출을 모색하고 싶다. 무언가 만들어보고, 좀 더 많은 글을 읽으면서.

_조금 더 한강과 자전거와 산뽀를 즐길 수 있을만한 온기가 좀 더 길게 남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제일 크다. 지금으로썬. 라오스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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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02:09 2011/10/18 02:09

이사 가기 전날 밤

_짐을 쌌다.

_여행가는 기분.

_부모님 집에서 하숙하는 마지막 날인데, 부모님들은 놀러가고 없다.

_누구나 파하하 웃을 표현이지만, 무리에서 자라 들판으로 혼자 떠나는 숫컷 사자의 기분이다. 음. 웃기냐?

_짐을 다 싸고, SUV 한 대에 꽉꽉 짐을 채운 뒤, 뻘뻘 흘린 땀을 샤워하고, 맥주 하나를 사들고 와 휑한 방에서 들이키는 중이다. 홀가분함과 노곤함과 알 수 없는 알 수 없음이 몰려온다. 이 곳에서, 이 신월2동에서, 이 정 하나 붙일 수 없는 동네에서 근 9년을 살았다니, 말이 돼? 미친. 이 시덥잖은 동네에서 나의 20대를 보내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왜 이렇게 이 동네를 비하하냐고?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의 체면과 기분을 위해 나의 20대를 비하할 순 없기 때문에. 몰라, 떠날거야.)

_짐이 차 한가득. 작년에 6개월을 떠날 땐 배낭 하나였는데 무어가 달라진거야. 빚을 근 천만원을 지고, 자꾸만 중력을 쌓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부모집 하숙할 땐 내 것이 하나도 없어 다 버리고 쉬이 도망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내살림 차려버리면 매달 나가는 월세랑 이자랑 쌓아놓기만 한 쓸모없는 물건들이랑 다 어째.

_하지만 예전에 그 때 그렇게 쉬이 떠날 수 있었음은 내가 책임지지 않은 삶의 부분을 마치 닻처럼 늘어뜨려 놓은 것이겠지. 언제나 끌어올릴 수 있는 닻을, 마성의 중력을 지닌 그 닻. 배를 타고 대륙으로 인도차이나로 멀리멀리 떠나도 곧 언젠가 나를 한 큐에 소환했던 그 미친 닻, "싹둑!"

_이 두려운 중력은 나만의 닻을 늘어뜨리는 것이겠지만, 부모하숙집 닻처럼 그렇게 존재를 모른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맘 먹은대로 거두고 또 다른 곳에 늘어뜨릴 수 있는 닻이 될 것. (하지만 전세금의 반은 대출이므로 닻의 중력의 반은 은행에 있다. 내가 끈다고 마음대로 끌려오진 않겠지. 그 무게를 살살 돈 주고 사야지.)

_방금 거실 진열장에서 와인 한 병 훔쳐왔다. 고무장갑까지 훔쳤음. 엄마 미안. 사랑해, 언제나처럼. (사실은 이제야 정상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_뭐 이리 유난떠니, 의식주 중에, 생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 중 하나를 하면서. (음, 요리를 시작한다면 식, 까지, 기본적인 것 두 개를 하게 될 거이군.) 하지만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기 참 우리의 이십대에 풀지 못한 숙제이자 우리의 삶에 늘 틱틱댔던 문제이겠지? 나만의 너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너에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나의 공간을 충분히 공유 전유 은유할 용의가 있어. 아니, 부탁이겠지. 어서 와 즐겨주렴; 망원동, 한강이 오 분이고, 재미진 시장이 코 앞이고, 마을버스가 홍대로 가고, 미친 맛진 돼지국밥집이 있는 동네(하지만 돼지국밥 따위가 7천원이란다. 사 줘.)

_내일도 바쁘다. 그냥 짐만 풀면 되는 게 아니라, 주문한 침대가 와야 되고, 주문한 의자(이리의자를 주문했어! 이리의자 말이야. 이리카페의 그 난쟁이 의자. 앉으면 아늑해지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그 의자 말야)가 와야하고, 커피메이커랑 청소기를 2만원에 판다는 집에 들러서 픽업해와야 하고, 아 물론 집주인느님 만나 계약서도 써야지, 그리고 잔금도 이체하고, 전세입자가 묻혀놓은 DNA들을 수세미와 락스로 제거해야하고, 우리 엄마가 외삼촌네 사무실에서 집어오는 냉장고도 옮겨다 설치해야 하고, 망원동 친구들 작업실에 쳐박아 둔 스탠드며 프로젝터며 물건들 집어와야 하고, 거기에 자전거도 뒀는데 일이 다 끝나면 가서 타고 와야지, 그리고, 그리고... 이 한 몸 영위하는데 억지로 조성한 조건들...

_이제는 핑계댈 순 없겠지? 늘 그런 핑계를 댔어, 나는 억압받고 우울한데, 왜냐면 부모집에 하숙하며 이전 세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삶의 계발이나 창조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리하야 하루하루를 쓰잘데기 없는 미드나 영화나 보며 숨어서 맥주 마시고 담배 피고... 얼마나 병신 같애. 그 피해의식과 핑계로 점철된 삶이. 물론, 혼자 살게 된다고 맥주를 덜 마실 거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월세 낼 생각에 후달리기는 하겠지. 그럼 예전처럼 피해의식에 기반한 spree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피해의식에 기반한 탐닉과 욕망과 내가 나를 죽이는 짓을 멈출 순, 아니, 조금은 덜 할 수 있진 않을까. 그 어느 하나 핑계를 댈 여지가 없게 되면.

_하나하나 챙겨갈 것이고, 좀 더 많은 창조를 해야할 것이며, 나를 그렇게 '몰아대지' 않을 것이야. 몰아댄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고? 이건 약간 '군중 속의 고독'을 겪은 사람이 자기에게 행하는 짓과 비슷한데, 인간이 '하염 없을 때' 하는 행동이며, 영원의 적막을 직시했을 때 하는 원초적이고도 자기파괴적인 그 모든 무엇이야. 음. 이렇게 말하면 알겠니? 모르겠으면, 더 살아봐.

_어우. 내일도 빡셀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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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3 03:29 2011/07/23 03:29

또,

_집을 구했다.

_손바닥만한 골방을 보여준 복덕방 아줌마가 이 곳 말고도 하나 더 있다며, 널찍하게 나왔다며 보여 준 방은 3분이나 둘러봤을까, 하지만 낯설어도 다정한 여자에게 스미스미 반한 것처럼, 나는 그 방을 뇌리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아줌마에게 생각해보겠다 한 뒤에 난 다시 그 집 앞에 가 서성이며, 이 동네가, 이 길이, 이 광경이 내 삶의 첫 시작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그 저녁의 발랄한 습기만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_다음날, 출근하는 9호선에서 그 짧은 순간 동안에 보글보글 끓는 고민을 하다가, "모든 선택의 순간에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모든 선택이 세상 최고의 선택이 되리라"며, 엉겁결한 단호함을 지니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는 내가 계약하겠소, 라고.

_내 삶의 첫 시작, 이라는 말이 우스울지는 몰라도, 생각해 보면 실제로 그렇다. 나는 이 신월2동이나 내 침대, 내 옷장 그 무엇 하나 내가 나의 취향으로 고른 게 하나도 없다. 이 방은 내가 수능 보던 날 시험을 마치고 나왔을 때 어머니가 나 걱정할까봐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나 수능보는 날 이사를 했다며 데려 온 집이며 방이다. 시험을 보러갈 땐 중고딩을 살던 신월7동에서 나갔다가 시험 보고는 이 곳으로 왔다. 미친 2002년 수능에 벙쪄하며 새 집이라고 이 곳에 왔을 땐, 이미 침대며 로만쉐이드며 모든 게 갖춰져 있었고, 나는 군소리 할 처지도, 정신도 없었고.

_그리곤 얼마나 앓이를 했는지. 뇌를 갉아먹을 만큼.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단 건 아니지만, 내가 내 생의 토대를 쌓지 못하고 있단 이유를 내 스스로에게서부터 찾으려 했고, 그러며 난 나를 갉아먹었지. 부동산 값이며 청년실업이며 그 무엇에 하소연을 하려고 해도, 결국 내가 내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단 것은 어떤 숫컷의 실질적인 자괴이자 억울함이었기에, 나는 계속 밖을 떠돌며, 스타벅스가 문 닫을 때까지 비벼대며, 하루 하루를 괴로워하며.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정처없던 방랑이던 작년의 6개월간 또한 이 상황에서 당장의 타개책이 보이지 않아 다 내팽개치고 도망간 것이 아닌가한다. 거주의 독립성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이 공간을 도망. 알아, pathetic 한 걸.

_이사를 준비하며; 사소한 나의 욕망이나 취향을 강조하려는 건 아니라, 내가 취하게 되는 그 모든 선택항들이 이렇게도 많고 다양하다는 것에 놀라워하면서도 기꺼워하며 후달리는 중이다. 컵 하나를 사도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사고 싶지 않다. 정말 파이트클럽에 나온 잭(에드워드 노튼이 타일러(브래드 피트)를 만나기 전)이 왜 그렇게 가구 카타로그를 열독하며 집착을 했는지 알 것 같은. 하지만 만만치가 않다. 침대 몇십만원, 의자 몇 만원, 청소기, 냉장고, 에쎄트라...

_월급의 4/1을 월세로, 전세금의 반은 빚으로---이게 제일 궁금하지, 그지?

_내가 내 삶의 무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이란; 망원동, 그 곳을 내 삶의 터전으로 고른 것, 언제나 그 곳의 쟝글쟝글한 삶의 무늬와 '홍대'와의 접근성과 한강의 은은함에 아늑해했던 것. 한 때 숙취를 풀러 산책을 하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을 쏟았던 곳이 그 동네다. 석호의 쓰라린 사랑을 위로하다, 나도 슬프면서 아무렇지 않은 채 우동이나 먹으러 가자며, 지나치는 가로수마다 원숭이마냥 대롱대롱 매달리며 석호를 위로하려, 하지만 쓰디 쓴 소주를 넘기기엔 너무나 취했던 그 슬픈 밤이 있던 곳이 그 동네다. 그래서 그 곳, 말고는 다른 곳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_여행이 내게 준 교훈 중 하나라면,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데에 그리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단 것이다. 이 모든 욕심과 기우는 아직 그 집에 이사를 가 있지 않으니, 이리도 샘 솟으며 꽃피우고 있단 것이고, 그 곳에서 둥지를 트고 난 후면 곧 난 내가 그리도 집착했던 빨간 의자와 사소한 장식들이 그 얼마나 쓸모 없는 소비였는지를 곧 깨닫겠지.

_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어떤 경계가 있다. 삶의 올망졸망한 무늬를 갖추는 것과, 돈으로 쳐발쳐발하며 욕망의 노예로 아무 거나 사다나르는 것 사이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이코노미컬한 삶이라도 삶의 쟁글거림은 놓치지 말아햐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소비는 죄악이기 때문에 검소한 삶을 살겠다며 쌩한 방에서 일생을 지속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 삶을 살겠다면, 언제나 번뜩번뜩함과 재치, 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이며, 손재주이며, 시간이다. 그 어느 하나 내게 있는 것 없지만, 눈을 이 곳 저 곳 굴리는 동안에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했다. 재료값이 없어 가구를 만들지 못하는 스무살 아이나, 새로운 가구 라인을 런칭하려 준비 중인 철학자, 같은 사람들. 그들에게 작은 협탁이라도 의뢰해서 받는다면, 내 방은 그 누구의 공간보다 특별한 것이 되겠지.

_하나 하나 갖춰나가지만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며, 적게 쓰고 적게 쳐먹는 것만이 나를 구원할 것이란 걸 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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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6 02:29 2011/07/16 02:29

누가

누가 이 곳을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한 일상의 기록을 하면,

_신사동으로 출퇴근을 한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일상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다만 11시 출근임에도 나는 올빼미 기질이 몸에 배어, 야밤의 불면증과 한낮의 기면증으로 주중을 버텨낸다.

_집을 알아보는 중. 20대 내내 홍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예술과 그 곳에서의 삶을 흠모하기만 했다가, 어떤 방식으로든 생활 터전을 그 쪽에 잡아보려 한다. 하지만 이 도시 서울이 가진 '부동산의 덫', 그러니까 그 사소한 프라이버시와 햇빛을 챙기려다 나의 기력과 시간을 모두 그 한 뼘 공간에 소진해야 하는, 덫에 빠지는 것 같아 조금은 불안. 그렇다면 또 부모님 집에서 하숙을 하며 겪는 마찰과 부자유를 생각하면 그쯤 돈이야, 라는 생각도. 돈은 항상 오고 갔으니.

_일전에 누군가의 글에서 스물 아홉에 직업을 가지고 월세방에 살며 '그래도 이젠 나는 나만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이의 글이 계속 마음에 밟힌다. 나도 나만의 역사를 쓰고 싶다. 사소하고 비루할지언정.

_작년에 홍콩에서 3개월을 지냈던 시간을 기억하다, 도대체 나는 왜 그 때 그 시간 동안을 그 곳에서 보냈을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했다. 물론 그 때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고 어떤 유예와 실험이 필요했던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유예'와 '실험'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험은 무언가를 포기했어야만 하고, 유예는 내가 가진 것들을 계속 지니고 싶은 욕망이다...하지만 나는 어쩌면 그 시간으로부터 '치유'와 '실패'라는 것을 하고 왔을까, 이 둘은 얼핏보기엔 양립불가해 보이지만, 바닥을 쳐 보면 치유라는 과정을 실제적으로 느끼게 된다.

_그리고 반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작은 규모의 삶을 정립하려고 발버동치는 동안, 그런 미친 실험과 방랑이 다시금 가능할까, 하며 요상한 노스탈쟈에 빠진다. 아마도 가능하겠지. 보증금 다 빼서 떠나면. 아니, 불가능하겠지. 나는 이미 너무 늙었어. 또 다시 호스텔에서 랜덤하게 흘려쓸려 클럽에서 술이나 붓자고? 아니. 허나, 그런 파탄과 낭비가 주는 매력은 내 다리의 힘을 뺄 정도이지...

_괴상한 아이러니이면서도 납득할만한 수준의 집착; 나만의 공간도 한 곳 없이 배낭 하나만으로 반 년을 살았으면서, 기어코 바득바득 나만의 공간을, 예쁜 스탠드와 의자를, 미니멀한 이불보와 펑키한 찻잔을 탐닉한다. 그 때의 노마디즘은 결국에는 있을 이 탐닉에 대한 선-면죄부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한낮 굶었던 자의 비루한 싸구려 식탐 같은 것일까.

_부모 집에서 하숙하는 시간에 대한 반동 같은 것일지는 몰라도, 지금 3평 정도 되는 작디 작은 내 방은 1월달에 집에 와 짐을 푼 이후로 바뀐 것이 많이 없다. 달라진 것이라면 배낭 속에만 있던 짐들을 탁자나 책장 위에 올려놓은 정도. 하지만 생활은 그 자체가 곰팡이의 포자처럼 이 곳 저 곳을 물들이며 번식하는지, 잡스런 물체들이 내 작은 방에 널브러져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비타민, 로션, 양말, 향수, 달력, 팔찌, 조은풀, 필름, 빈 와인병, 데오도란트, 등등.

_생각해보면 언제였던가, 대학을 졸업하고 더 이상 이 곳에서의 삶은 불가할 것이라며 벽에 잔뜩 붙여놓았던 유럽여행하며 산 엽서라든가 편지들, 사진들을 다 떼어 버렸다. 그리곤 거의 1년 동안 나는 이 곳을 내팽개칠 궁리만 하며, 그러며 나의 우유부단함을 저주하며, 그와 함께 내 생을 저주하며, 그와 함께 나 자신을 저주하며 살았었다. 막차 시간이 다가오면 결국 신월2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나는 찌질하고도 병신 같이 살았었지. 내 방과 내 신체는 같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서로를 증오하며 붕 떠서는 어떤 정신병을 일으키는 간극을 만들어냈었지.

_아무튼.

_5월 초 연휴에는 전주-목포-제주를 자전거를 들고 여행했는데, 그 때의 기록을 해야하겠지만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네. (내 작은 노트에만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고 그 후로 5년을 살았던 유달산 자락의 달동네 집을 다시 찾았던 것이나, 제주의 짙은 안개 속에서 방목된 말들이 환상적인 자태를 드러내는 순간을 바라보며 정갈한 페달질을 하던 기억, 그 시간들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곧 이 곳에 다시 적어야 할듯.

_집, 집, 집, 방, 방, 방, 들어가는 돈, 나가는 돈, 생활의 규모에 대한 생각을 미친듯이 하면서도 이런 정주와 소유에의 욕구가 탐욕의 씨앗이 될까봐 두렵다. 내 삶이 팍팍해지면 타인에게 따스한 시선을 주기도 어렵고, 내가 가진 것들이 나를 빨아먹는 역전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쎄빠지게 일하겠지.

_만날 트위터만 할 땐 촌철살인과 개드립으로 모든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그와 동시에 너무 많은 눈이 부담스러웠는데, 이 곳에서 이리 내맘대로 씨부리니 참 편하고 좋네.

_집을 나가겠다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며 못 나간다며 나가려면 등록금 내 준 걸 다 갚고 나가라며 참으로 히스테릭하게 반응하셨다. 난 그걸 보고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새끼 떼는 어미의 자괴와 혼란이 느껴지는 것 같아, 어떤 측은함과 (나를 어린아이로만 본다는 것에 대한) 분노에 헛웃음만 나왔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오늘 아버지와 함께 한 대화에서 어머니는 많은 포기를 하셨는데, 분명한 것은 나는 내가 내 삶을 책임지게 되었을 때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리란 것이다. 가족은 태양과 같아 멀리 있으면 양분이어도 가까이 있으면...

_변혁의 시기라도 다들 찌들어 찌질하게 산다.

_그러진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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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6 03:14 2011/06/26 03:14

나가사키


나가사키

"그 모든 시간 동안 제가 확신을 갖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분명 이것이었지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의미가 선재(先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의미라는 생각은 인간이 자신을 불안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인데, 인간은 의미 찾기에 사로잡혀 혼미해졌죠. 그런데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어떤 '위대한 주관자'도 없어요. 이 확신이 제게 현기증을 안기는 날에는 이따금 내 앞에다 물건들을, 내가 떨어질 수 없었던 추억의 물건들을 펼쳐놓을 필요가 있었지요. 그 물건들에서 어떤 구원을 기다려서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그 물건들에서는 창백하고 차가운 빛이 꼭 우주의 '바탕색'처럼 풍어져 나왔지요. 더구나 그 빛은 별의 광채와도 이어져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 사진들에 자리한 얼굴들이 대개는 떠난 사람들의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우주의 '바탕색'이란 건, 불어 원문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주 배경 복사'의 오역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모든 헌법에 누구나 자신의 먼 과거의 장소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불가침의 권리를 집어넣어야 할 거라고 저는 혼자 생각했지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모든 아파트와 단독주택과 정원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 꾸러미를 맡겨서 이 추억의 겨울 왕궁에서 몇 시간이고 머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런 시간의 순례를 새 집주인들이 막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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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1:22 2011/05/20 01:22

빠굳뿓


사용자 삽입 이미지




Pagudpud, Philippines

이 나무들은 빠굳뿓의 야자나무들이다. 해변이 아름다운 그 곳에서 나는 사흘을 머물렀는데, 머무르는 내내 비가 왔다. 바다는 비가 잠깐 그쳤을 때 거닐기만 하고, 햇볕이나 수영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 곳에서 묵었던 곳은 한 할머니가 사는 민박집이었는데, 하루 오륙천원인가를 내고 머물렀다. 그 집에서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이 광경이 펼쳐졌다. 밤이면 이따금 정전이 되어서, 밖에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문을 열고 나와보면 아 아 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사아악, 사사사악, 하는, 야자 나뭇잎이 서로 비벼대는 소리만이 귀를 간지럽혔다. 하늘의 빛깔에 나무들의 실루엣이 보일 법도 했지만, 인공 빛이 없던 그곳은 정말 칠흙 같은 어둠이었다. 칠흙이 실제로 어떤 물체인지는 난 잘 모르지만 말이다.

정전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현관의 난간 위에 드러누워 어둠 속에 있을 저 야자나무들을 보며 스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저 그 소리를 들었다. 한참이고 들었다. 눈은 뜨고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시간, 관계, 과거, 미래, 미련, 시련, 걱정, 희망 따위 그 어느 것이라도 접어두고 일단은 다 끊어놓을 수 있었던, 아 아 무 것도 없는 곳의 정전; 어둠만이, 실재였다.


머리가 무거울 때면 이 때를 떠올려보려 애쓴다.
그 무,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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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30 03:25 2011/04/30 03:25

Science




In general we look for a new law by the following process. First we guess it. Then we compute the consequences of the guess to see what would be implied if this law that we guessed is right. Then we compare the result of the computation to nature, with experiment or experience, compare it directly with observation, to see if it works. If it disagrees with experiment it is wrong. In that simple statement is the key to science. It does not make any difference how beautiful your guess is. It does not make any difference how smart you are, who made the guess, or what his name is - if it disagrees with experiment it is wrong. That is all there is to it. It is true that one has to check a little to make sure that it is wrong, because whoever did the experiment may have reported incorrectly, or there may have been some feature in the experiment that was not noticed, some dirt or something; or the man who computed the consequences, even though it may have been the one who made the guesses, could have made some mistakes in the analysis. These are obvious remarks, so when I say if it disagrees with experiment it is wrong, I mean after the experiment has been checked, the calculations have been checked, and the thing has been rubbed back and forth a few times to make sure that the consequences are logical consequences from the guess, and that in fact it disagrees with a very carefully checked experiment.

This [analysis] will give you a somewhat wrong impression of science. It suggests that we keep on guessing possibilities and comparing them with experiment, and this is to put experiment into a rather weak position. In fact experimenters have a certain individual character. They like to do experiments even if nobody has guessed yet, and they very often do their experiments in a region in which people know the theorist has not made any guesses. …

- Richard Feynman,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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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02:10 2011/04/08 02:10

Sleepwalk Circus

필리핀에 갔을 때 평소 좋아하던 필리핀 인디밴드인 Up Dharma Down의 공연에 갔다가 락 어워드 행사에 초대받았었다. 백스테이지에서 혼자 낯선 이방인이라, 나는 그 어색함을 지우려 이 밴드의 기타인 카를로스와 같이 맥주를 들이붓다가 그 곳에서 같은 레이블에 속해 있던 Sleepwalk Circus란 밴드와도 약간 이야기를 나눴었다. 베이스를 치던 여아의 고양이 같은 눈매가 참으로 나를 가슴멕히게 했었는데, 뭐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나중에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얼마전 자전거 탈 때 그들의 음악을 켜게 되었었는데, 어쩌다가 꽂혔는지 계속 듣는 중이다. 정작 필리핀에서는 몇 번 돌리다가 금방 흥미를 잃었었는데 말이다.

그 어워드 행사에서, 카를로스는 Sleepwalk Circus의 기타 Pivey가 The guitarist of the year상을 타게 되었을 때 너무도 좋아하길래, 니가 못 탔는데 뭐 그리 좋냐 하니 자기는 작년에 탔고 Pivey를 비롯하여 얘네들은 다들 자기 동생 같은 아이들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Pivey의 기타엔 카를로스 또는 UDD의 흔적이 많이 묻어있다. 하지만 Sleepwalk Circus는 멜로디가 잘 정제된 UDD보단 분명 훨씬 Rocking한 게 있다. 그 raw함은 곧 다가올 봄과 참 어울린다. 풋풋하고 낯설으며 익숙치 않은. 몽환적인 느낌은 황사와 꽃내음을 섞은 것 같은.

그들의 음악은 묘하게 요즘과 닮았다. 겨울이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음악이지만 어쩐지 겨울눈 탱탱 파랗고 추운 하늘과 묘하게 어울린다. 그들을 귀에 꽂고, 온몸을 움츠린 채 버스를 타면, 회색빛 옷에서 튀어나와있는 회색빛 얼굴들, 어색한 눈맞춤을 요리조리 피하며 음악에 파고든다. Freedom in one second의 raw함과 이명 같은 몽환성이 적절히 중첩할 때면, 난 운다. 엉엉 우는 건 아니고, 속눈썹만 젖을 정도로 눈물을 찔끔인다. 북받치는 느낌, 그리고 눈물이 찍어낸 뒤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 열심히 그리고 차카게 살아야지,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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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5 01:31 2011/03/25 01:31

불안 끝

Me, March 2011 

이제 불안하지 않다. 만족스럽고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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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00:30 2011/03/22 00:30

불안불안불안

불안하지 않은 것이 불안한 시기, 세상이다. 나의 세계는 너무 아무 일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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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5 23:33 2011/03/15 23:33

불안불안

불안불안하다. 또다시. 추위, 밤, 혼자, 그리고 어떤 막막함.

주말 내내 짧은 영상을 찍기 위한 구상을 했으나, 도대체가 뭐 제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어쩌다 배우들까지 섭외해버렸지만, 그저 수건을 던지고픈 심정이다. 아.

사실,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나의 '작업'을 한다는 것, 분명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랑해야할 것인데, 어떤 막막함과 막연함만을 느끼며 초조해만 하고 있는 건, 왜일까. 아마도 나만의 욕심과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하는 이 몹씁 좋게말하면 완벽주의 나쁘게 말하면 깡 없음 때문일까.

우습다. 이 감정의 변비는 스스로 만든 것. 그 누구하나 강요하는 이 없고 닦달하는 이 없는데, 나 스스로 이 파랗고 시린 느낌에 우울해 하고 있는 건, 퍽이나 멍청한 짓이다. 뭐 그리 욕심이 클까. 뭐 그리 갑갑해하나.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뭐가 됐든 plan A는 마련하자. plan B 없음에 다 엎어지더라도,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게.

아무튼 이 느낌이 너무 싫다. 뭔가 다 망쳐진 것 같은 기분. 도저히 내 능력으론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무, 상실, 막막함. 심장 아래를 차디 찬 혀로 핥아대는 것 같은 기분.


털어내야.

leaf

2011/03/14 02:37 2011/03/14 02:37

storytelling

거짓말을 잘 하면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을까? 짧은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머리를 뜯고 긁고 싸매도 적절한 것 하나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를 싸고 싸도 클리셰 뿐이다. 막장 드라마 작가들 욕할 게 아니다. 그 클리셰의 진부함과 오글거림에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아 쫌.

leaf

2011/03/13 00:55 2011/03/13 00:55


Hey,

Sorry for replying to you pretty late, again.
I guess you've worried about me because you've read my blog? But man, that's like an year ago. On my traveling, I stopped updating so it's just stand-still when I was in bad-mental-shape. Yeah, I was pretty bad when I left Korea, 2010 July, but somehow long way alone rehabbed me.

And now, while I was out there, a friend of mine established a new small IT company, and he wanted me to join, and at that time I was in Thailand my money was almost dried up, so as you know, I came back home on Jan this year and working in his company.

Maybe I'm fed up enough with all the 'unforeseeableness' (of travel) and insecurity, now I'm quite enjoying this stability. Thankfully the folks at the office are quite cool, and it's pretty much stress-free, so I laugh a lot more and talk more. Also I bought a bicycle and I commute with that, although it's pretty far from home to the office (21km) but it makes me sleep good.

This is quite a different feeling, that I actually want to 'SUSTAIN', because I do remember that I never expect anything from the future, a year ago. Maybe I've given up many things, like some unarchievable dreams which had been suffocating myself, but I have to admit my chances are gone now. And most importantly, trying to do more exercise, to eat healthier food, to save some money aside for the trip to Holland (in near future); 'trying to be a decent adult' is not that bad at all.

Hey, do not blame yourself by some hiccups of your relationship, cuz those are all the ppl go through, so maybe it's not because you're repeating all the old spins. You might have to stop thinking the line between sane/insane, because no one's totally sane 24/7 and that's insane, huh? Of course you're an expert on this matter, but for me an Asian, sometimes western clinical psychology stigmatizes ppl too much even though it's not perfect field of medicine.

If you are trying to find a job, I guess some manual labor or something physical might be good for you, cuz all you need to do for now is erasing thoughts that chokes you, isn't it? Or, maybe you have already got a decent job and having a decent everyday. Even if it isn't it is totally okay to spit out few lines to me, so let me know, okay?

I personally do not think that northern Africa's revolts will lit up Spain, because it is 'fortress Europe', so Europe as a whole will handle its problems somehow. Even if it happens, I guess that's the start of the massive revolt in global scale, because that kind of event will melt down financial markets and then that means the biggest failure of capitalism. Ha. (but somehow I hope that kind of gigantic changes can happen, because my country I've come back in 6 months had become even crazier society than half a year before. Gosh)

But, yeah, hang on, dude, just try not to hurt yourself too much.


Cheers.
J

leaf

2011/03/10 02:07 2011/03/10 02:07

140자를 넘겨 글을 쓰는 게 점점 힘이 들어지고, 그렇게 점점 140자 이상으로 생각을 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어찌 그리 한 챕터, 아니 한 페이지 넘어가기도 숩지가 않은지.

, 라고 글을 쓰고 나니 140자도 안되는 구나, 젠장.

leaf

2011/03/09 01:48 2011/03/09 01:48

ZCR-PRESIDENT

My first zero-emission transportation. Not just an eye candy. Rode 50km today.


_자전거 샀음. 요즘 생의 낙. 연료는 뱃살.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인해 즐길 수 있는 속도감이나 경치 감상 같은 게 좋다기 보다는, 내가 이 서울이라는 공간 경험을 조금은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지금껏 애증만 켜켜이 싸인 이 도시를 달리 대할 수 있어 좋다.

_언제나 대중교통의 네트웍과 시간표에 갇혀 갑갑해 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차 운전을 하게 되어 얻게 되는 자유로움(?)과는 또 다르다. 올림픽 대로 대신에 시민공원을 달리고, 남산터널 대신에 국립극장으로 (꾸역꾸역) 오르게 된다. 그러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청쾌한 공기 내음을 맡는다. 대중 교통이나 자동차가 주지 못하는 새로운 공간 영역들. 걸을 땐 잘 느낄 수 없었던 숨겨진 땅의 질감들.

_이동 수단이 바뀐다는 것은 공간 경험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 도시의 10km는 티머니 900원의 A to B, 지금 내리실 정류장이 아니라, 내 기력을 바퀴의 동력으로 30분 동안 전환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차 피하고 사람 피하고 햇살 쐬고 바람 맞고 강물 보고 음악 들으며 가쁜 호흡을 가누어야 하는, 일종의 모험 또는 도전 또는 유희 또는 삽질이 되었다. 그게 좋다.

_그러니까, 지금까지의 공간 경험은 언제나 버추얼하기만 하지 않았나 싶다. 내 몸은 공간에 완전히 무기력 하거나(차가 막힐 때) 완전히 전능했다(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 있어 신체적 근력은 거의 아무 역할도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A to B를 하는 동안에 'to'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심지어 요즘은 다들 이동 중엔 창 밖보다 모바일 기기들의 스크린을 더 많이 보지 않나), 하여 A와 B는 섬처럼 동떨어진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절된 각각의 공간들은 일종의 이상한 페티시를 갖게 된 것 같다. 홍대는 어떻고, 강남은 어떻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차를 주차장에 대고 오르는 북한산은 피트니스 클럽과 별다를 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간을 직접 달리는 경험은 그 'to'에 gradient를 부여한다. 그러면 A와 B 자체가 서로 희미해진다. 분절을 시킬 수 없으면 페티시도 불가능하다. 하여 어쩌면 gradient는 fetish의 반대말일 것이다.

_그러니까, 물리적 공간은 내 신체에 각인을 한다. 내 신체는 거리 공간을 좀 더 고전적인 의미의 즉물적인 세계로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을 되돌려 받았다는 것이다. 내연 기관의 발명 이후 계속해서 우리의 신체에서 몰아내려고 했던 그 경험을 말이다. 그건 왠지 꽤나 놀라운 기분이다. 모든 결과가 나의 육체적 고투에 달려 있다는 것 말이다. 그건 나를 좀 더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조금은 도전적으로 만드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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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02:39 2011/03/01 02:39

2010년의 뒷 6개월 동안 세 권의 노트를 앞 뒷면으로 가득가득 채웠다. 주인공은 언제나 모나미153. 그 습관은, 의도적으로, 버리기가 싫어 이 땅까지 가지고 왔다. 하여 ECOBRIDGE 카페에서 산 4500원짜리 친환경 노트에 요즘에도 적는다. 시덥잖은 것도 다 적는다. 아침에 햇살이 어쨌다는 둥. 그림일기도 아닌데. 뭐든. 하여 맘이 묵직할 때면 나는 누구를 보기보다 노트를 꺼내고 싶어진다.

그러면 이따금은 펜이, 손이, 아니 분신사마가, 아니 뭔진 모르겠는데 내 손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나는 펜을 들 때 생각도 못했던 말들을 적고 있다. 이따금은 말이 너무 많아 손이 다 악을 질러. 그럼에도 최대한 글씨를 흘리며, 나는 적어나간다. 뱉어낸다. 주저린다. 씨부린다.

지만,
좀 진중하고 끈기 있는 하이퍼그라피아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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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01:59 2011/02/16 01:59

I actually update

사실 제 일상의 궤적들은 이 곳에 더 자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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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01:45 2011/02/16 01:45

여럿

여럿이라는 건 참 좋다.
골치아픈 문제들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저 몸에 힘을 빼고 휩쓸려 버리면 나는 재미있는 놈이든 멍청한 놈이든 뭐든 딱지가 붙게 되고, 그 딱지만 있으면 그 여럿 안에서는 어쨌든 비빌 수가 있다. 결정이 항상 나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생이란 결국 자기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시간을 쓰는 건 이상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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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03:52 2011/02/11 03:52

과잉의 고향

내 고향땅에서 한 가지 새롭게 느끼는 것은, 참으로 모든 것이 과잉하다는 것이다; 음식, 술, 물자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대와 압박, 1차적인 욕망들. 모든 것은 차고 넘치는데,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낭비는 둘째치고라도 그 과도함을 감당하지 못해 다들 겔겔댄다는 것이다. 그리고 웃기는 것은 잠시라도 그 무어라도 부족할라 치면, 술이든, 관심이든, 그 잠시 동안의 결핍 또는 권태를 두려워하며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고. 아니, 어쩌면 그 결핍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불안을 두려워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그 누구도 딱히 결핍을 '마련해야하는' 수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렇다, 결핍과 부족함이란 '굳이' 애를 써야하는 무엇이 되어버렸다, 술자리에서 '눈치를 보며' 콜라를 주문하듯).

어쨌든 이 곳 사람들은 권태를 호환마마보다 무섭게 여기면서 그 공포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자기자신을 못 살게 군다. 그리고 항상성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토악질을 해댄다. 위장의 것을 게워내는 것만이 토악질이 아니라, 과잉이 정상인 줄 알다가 못 버티는 그 모든 대상행위들이 모두 큰 범위의 토악질이라고 볼 수 있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 변택적 관음증, 집단 따돌림, 도박 중독, 가정 폭력, 그 뭐가 됐든, 모두가 모두가 참 개성적으로 토를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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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6 00:48 2011/02/06 00:48

vagabonding, still

오랜만에 겪는 일종의 루틴이 선사하는 안정감을 향유하는 중. 더 이상 그 날 밤 잘 곳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이 얼마나 맘 편한 일인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행의 기술vagabonding을 몸에 밴 채로 살고 싶다;

  • 그리 많은 옷이나 물건을 필요로 하지 않고,
  • 몸을 언제나 많이 움직이며,
  • 낯선 이를 대할 땐 웃음부터 준비하고,
  • 혼자 보내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실 이 곳에선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시간.)
  • decisive하고,
  • 음악을 귀 기울여 들으며,
  • 거리의 사람들 표정을 조금은 주의 깊게 살피고,
  • 일기를 쓰고,
  • 음식의 맛을 음미할 줄 알 뿐만 아니라,
  • 과일을 많이 먹고,
  • 게이와 레이디보이들을 구별하고 피할 줄 알며,
  • 샤워 후 푸쉬업 40개.


세상을 미워하던 7개월전 꽤나 자주 들낙였던 카페 ECOBRIDGE를 다시 찾아서는, 스탬프12개 무료 쿠폰을 내밀며(11개를 채우고 떠났었다), 커피와 끄적임을 하는 모습은 똑같지만, 이제 더 이상 나는 이 카페를 나를 감금하고 있는 서울 감옥의 휴게소가 아니라, 필리핀 빠라냐께에서 늘 들르던 그 카페, 태국 피피에서 비오는 날이면 죽치던 북카페, 밤10시를 이후엔 미친 테크노를 틀던 방콕의 Cafe De Moc, 그 여러 나의 행아웃 중 한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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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1 01:13 2011/02/01 01:13

몽콕, 열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랜만에 어떤 차분을 안고 돌아왔는데,
그래서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고 뉴스를 봐도 별로 속도 안터지는데,
그렇게 뭐 다 괜찮은데,

이따금 몽콕의 형형하던 네온들이 떠오를 때가 있어. 인파가 가득가득찬 거리를 혼자서 넋 놓고 쏘다니던 때가 있어. 그러면 나는 마치 0.5초간의 열병인 것 마냥, 심지어 약간의 현기증이 들 정도로, 급 당혹을 해. 그 때가 그 시간들이 이상스레 서러워 져. 그 시간을 그저 그리워 한다는 건 아냐, 그렇게 단순하게 그 때가 좋았지, 가 아냐. 이 서울의 -10도 추위와 이상하게 통하는 구석이 있는 그 서정, 비정하게 화려한 도시의 매혹, 분명 그건 어쩌면 왕가위 영화로부터 학습된 서정일 수도 있지만, 뭐 어쨌든, 그 서정이 감성이 나를 사로잡게 되면 나는 마치 손 씻은 범죄자 마냥 과거를 회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는 건데,


도시의 밤, 그것의 매혹, 치명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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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01:09 2011/01/24 01:09

Seoul,and


서울에 (돌아)온지 열흘.

이 경악스런 추위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고, 가족들, 친구들과도 간소한 재회를 가졌다. 공항철도가 서울역까지 가고, 집 앞 오뚜기 수퍼는 리모델링을 했으며, 새 직장을 갖게 된 친구들, 결혼에 대한 풍문들. 나는 2010년 7월 2일 짐을 이고 도망쳤던 모습 그대로(일거라 생각하는 바)이지만, 그럼에도 주변의 사소한 변화들을 짚는다.


돌아온 이 곳. 같은 변기에 6개월만에 다시 오줌을 눌 땐 지난 나날들이 실제로 일어나긴 한걸까, 모든 건 그저 내 상상이 아닐까, 하는 당혹스런 생각이 들지만, 사실 나 자신이 이 곳을 인지하는 모습을 관찰하면 모종의 변화가 포착되기도 한다. 뭐랄까, 좀 더 나 자신이 투명transparent해졌다는 느낌. 일전처럼 뿌리박힌 불안이나 자격지심 없이, 이루지 못할 열망에 쉬이 달뜨지 않게 되었다. 이런 나의 모습은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부분이지만, 반대로 어딘가 꺾인 것처럼 자근자근해진 나, 고향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 스스로를 돌아보면, 저기 멀리 거대한 강이 느리게 흐른다.



말하자면 (완전)연소 후의 미온 이랄까,

12월 중순부터, 근 한 달간은 하루 하루를 마치 내일은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았다.

순간 순간을 감사하며, 언제나 환하게 웃었다. 웃통을 벗어제끼고 꽃게처럼 춤을 추던 밤의 해변가, 온 몸을 타고 흐르는 Pum 레스토랑 파타이의 맛, 달달거리는 스쿠터를 끌고 질주하던 매 홍 손의 260km, 망가진 스노클링 고글에도 바닷물을 투투 뱉어가며 좇던 피피의 열대어들. 어쩌면 누구나 안다만 해의 해변과 말레이 반도의 음식에는 그리 나긋나긋해지리.

그리고 돌아온 이토록 차가운 서울. 떠나오던 날 피낭은 30도를 오르내렸으니 서울의 최저기온을 더하면 45도의 기온차? 그런 이 곳에서 어떤 종료 의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할지도.


내 고향 이 곳은 참 풍요로운 곳이다. 효율적인 대중교통에 감사하고, 비데의 물줄기에 감사한다. 중앙난방과 광랜에 감사한다. 지난 나날들이라고 어떤 부족함을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침대벌레가 없는 포근한 잠자리는 진정 감사할만한 것이다.

물론, 내가 스쳤던 땅들도 참 풍요로운 땅이다; 햇빛, 웃음, 해변의 투명도 와 같은 것들을 풍요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추위가 언제까지 갈까? 자전거를 하나 사서 타고 다니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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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00:32 2011/01/13 00:32

Mae Sod

수코타이에서 유적지 사이를 자전거 가르며 즐거워하던 것도 잠시, 조금은 지리해진 마음에 아무 것도 아는 바 없이 오게 된 매 솟. 버마 난민들을 위한 NGO 직원들의 베이스 캠프인 이 도시는 그들 뿐만 아니라 인도인, 회교도들, 태국의 다른 여느 곳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 잔뜩 엉켜있는 귀걸이들 같은 버마글로 된 간판들을 봤을 땐 퍽이나 생소한 느낌. 식당에서 팟타이를 먹으며 보게 된 버마 방송국의 한 TV쇼, 그 빈티지함과 순박함에 넋이 빠져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버마 대중가요는 뭐랄까, '나는 외로움 그댄 그리움' 같은, 80년대의 순진한 멜로디와 같은.

자전거를 이틀간 빌려 국경 초소까지 6킬로미터를 달려 버마 땅을 보기도 하고, 국경 시장에서 면세 담배와 비아그라 파는 것을 구경하고, 색유리로 가득 채워져 햇빛에 쉴 새 없이 반짝거리는 불상에 홀려 걷다 절의 개들이 짖으며 쫓아오는 바람에 혼비백산 도망가기도 하고.

그런데 왜 이렇게 게이들이 들이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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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17:33 2010/12/15 17:33

Bangkok

2년 만에 다시 찾은 방콕, 능 씅 쌈 씹 하 혹 젯 뺏 까오 씹, 크리스와의 두 달만의 조우, 그리고 중독적인 여행자 거리의 매혹, 매혹, 에 취해 밤을 호흡하다 쓰러져 잠이 들면 아이들 뛰노는 소리와 후끈한 열기에 잠을 깨지. 두 그림의 서로 다른 부분을 찾듯 2년 전에 비해 달라진 부분들, 4년 전에 비해 달라진 부분들, 그대로인 것들을 확인하고 더듬으며, 아침이면 국수를 먹고 파인애플과 파파야 한 조각씩, 봉지 커피와 갖 짜낸 오렌지 쥬스, 그러다가 돼지 고기 바베큐도 한 두 개 집어 먹고, 가끔씩은 닭다리도, 망고와 찰밥.

방콕의 구석구석; 시암 스퀘어, 실롬, 칫롬, 왕랑, 똑 같은 곳들을 다시 찾는데, 그럴 때마다 예전에 이 곳에 와봤고 지금 다시 오는 것처럼 나는 언제나 이 땅을 사랑하고 애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집 떠난지 오랜 내게 이 곳에서 시간을 늘어뜨리는 것 쯤은 일도 아닌데,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점점 끝을 보기 때문에, 다시금 기약 없는 떠남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이 도시를 한 걸음 한 걸음 내 걸을 때마다 내 가슴 속 구석구석 아련아릿하다. 매일 밤 난리도 아닌 꿈 속을 헤매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나는 내가 지금 방콕이라는 지각을 서서히 하게 되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덜 깬 잠만큼 몽롱하며 은은한 기쁨을 맛 본다.

커 너이 캅; 이거주세요, 라카 토라이 캅; 얼마에요, 닭은 카이, 계란은 까이, 거리 표지판을 보며 태국 글자와 발음을 연결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건 참 요원한 것 같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의미와 사정들을 파악해보려고 데굴데굴 머리를 굴리다 어쩌다 요행으로라도 새로운 단어라도 알게 되면, 미지근한 만족감에 휩싸이지. 어렸을 때 아빠 차를 타고 갈 때마다 난 길가에 휭휭 지나가는 간판들의 글자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어댔는데, '슁글'처럼 모르는 말도 많았지만 어째됐든 맘 속으로 글자들을 중얼거렸던 그 때와 묘하게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어, 이 타지인의 무지란.

지금 이 곳 Cafe DeMoc에서 내다보이는 민주기념탑 주변에 잠뜩 걸린 반짝이는 주황빛 전구들처럼, 상냥하게 아련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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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7 22:29 2010/12/07 22:29

Going home

Departs - Sat, 27 Nov, 2010
Flight: FD 3713
Departing: 10:45 (HKG) Hong Kong
Arriving: 12:40 (BKK) Bangk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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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7 03:42 2010/11/27 03:42

Hiding place

문화 차이이겠지만, 각 나라 사람들은 그들만이 가진 표정 언어나 제스쳐 또는 심지어 눈빛이 드러내고 있는 의향들 감정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내가 모르는 것처럼 그 미세한 변화나 드러냄을 내가 캐치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들 또한 내 문화가 가진, 내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드러냄들을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미루어 짐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언제나 한국 땅을 떠나서야 좀 깊이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던 것은, 난 언제나 내 문화가 가진 미묘한 표정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무지가 가진 좁고도 안락한 정신적 공간에 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미묘한 무지(또는 차이)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나의 동류, 다른 한국인의 얼굴을 타지에서 발견하게 될 때이다. 굳이 말을 섞을 필요조차 없다. 수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는 대로에서도 한국인들의 얼굴은 마치 형광펜으로 중요표시를 해 둔 것 마냥 턱 하고 내 시야에 걸리곤 한다. 그리고 그 한국인들의 얼굴을 잘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현지인들의 얼굴에서 캐치하는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 그 사람의 감정이나 의향 같은 것들을 훨씬 많이 잡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하지만 그건 마치 발가벗고 서로를 마주하는 것 마냥, 내가 그들 표정을 인지하듯 내 표정 언어들 또한 드러날 것을 우려해 애써 시선을 돌려버린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다 알아들으면서도 한국말 하나도 알아 듣지 못하는 순전한 현지인인듯 행동하곤 한다.

굳이 그 차이들을 애써 피할 이유는 없지만, 그게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한국의' 미묘한 표정/눈빛 언어는 (내 기준으론) 너무 깊은 곳을 드러내길 강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악을 질러야 한다거나 가래 뱉는 소리로만 음성이 구성되는 언어가 있다면 그건 참 말할 때마다 곤란할텐데, 뭐 그런 것과도 같다. 언어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언어는 말을 할 때마다 나를 참 피곤하게 한다. 뭐 어떤 이는 원래 목소리가 커서, 또는 가래가 많이 나와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전혀 불편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좀 모두가 가진 어떤 능력이 좀 부족한 것 같다는 것이다.

늘 그 미묘한 언어를 모른척하고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인식의 영역에 편입된 것을 퇴출시키기는 편입시키는 것보다 수만배는 어렵다. 문자 언어를 배운 후 글자를 다른 어떤 것을 지칭하는 기표가 아니라 단순히 짝대기 몇 개와 곡선의 조합으로 '매 번', '의도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내가 익숙한 어떤 눈빛 언어를 대하게 되었을 때 그에 걸맞는 눈빛이나 표정 반응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은 거의 무조건 반사에 가깝다. 그러면 그 때마다 악을 지르려고, 가래를 끓여보려고 애를 쓴다. 용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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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4 16:37 2010/11/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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