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카플란
타타르로 가는 길
_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누구나 어떤 지리적인 '의식의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나의 의식이 인지하고 있는 영역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약간은 심리적인 것이어서, 단순히 이성적으로 지구의 위도 경도 어디쯤에 시에라리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과는 약간 다른 차원의 말인데, 어쩌면 그것은 그 지역, 사람들, 등등에 대해 얼마나 'empathetic' 해질 수 있느냐는 말이며, 아마도 그걸 가장 쉽게 아는 방법은, 나 같은 경우엔, 머릿 속에서 세계 지도를 떠올리고는 익숙한 지역들을 찬찬히 짚다가 어디쯤에서 끝나는 가(또는 어디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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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현지에 직접 가 보는 것이 아마도 그 경계의 범위를 확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또 물리적으로 현지를 가 봤다고 해서, 그리고 가보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의식의 경계가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허니문으로 발리에서 몇 일을 보낸 커플에게 인도네시아가 그들의 의식에 포함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며, 직접 미국땅을 밟은 적 없더라도 늘 미드를 봐왔던 이에겐 분명 미국은 그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땅이다.
_스무살 무턱대고 유럽을 배회할 무렵 난 그리스를 가는데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를 거쳐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또는 마케도니아를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바리Bari에서 페리를 탔었다. 그 당시로는 그게 유레일 패스가 통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굳이 이탈리아의 구둣굽에 붙은 바리까지 갈 필요없이,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를 통과'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당시에 가능하기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그 당시 내게 있어 독일 위 쪽(북유럽), 체코의 오른쪽(폴란드 등), 그리고 그리스 위 쪽은 일종의 어떤 의식의 경계였다. 지중해 남쪽(!)은 말 할 것도 없고.
_그 이후에 물리적으로 그 의식의 경계를 부수는 일은 가끔 있었다. 멕시코에서 과테말라로 넘어가던 그 비가 미친듯이 퍼붓던 날, 그리고 인천항에서 탄 중국행 페리에서 처음 산둥반도의 안개 낀 웨이하이의 모습을 봤을 때. 하지만 참 오랫동안 스무살에 쌓아놓은 저 경계는 무너지지 않고 살아오다가, 그 한 폭판을 훤하게 드러내는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우습지만, 한 개인의 경험에서 그은 그 경계는 분명 EU와 NATO의 경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내 의식의 작용이라기 보다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분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헝가리에서 시작해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그리고 시리아와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또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투르크메니스탄을 아우르는 카플란의 20세기 후반의 여행기(라고만 부르기에는 뭐한, 정치적 분석과 현지 취재가 결합된 저널리스트의 보고서)이다.
"하지만 이곳(루마니아)의 문제점은 민주주의가 과연 범죄적 과두정치를 대체할 만한 유용한 기구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치 체제란 표어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 안에서 작동되는 권력 관계의 실질적 움직임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_정치학의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 중에 흔히 거론되는 것이, 일종의 사회계약인 대의정치를 어기는 시민들의 참여 정치(혹은 실력행사)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난 촛불시위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옳지 않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민주주의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작년 태국에서 공항을 점거하기까지 했던 대립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플란은 그의 여정 중에 이런 어떤 불합치를 그가 다녔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목격한다.
_스스로 어떤 현대적 국가를 세워보지 못하고 소련에 편입되었다가 공산주의 몰락 후 내버려 놓은 자식처럼 팽개쳐진 국가들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서 서방은 뉴스 등으로 팩트만을 아는지는 몰라도, 그 시스템 안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은 (당시, 90년대말에는)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란, 대다수의 국가에서 정치 체제는 허수아비처럼 존재하고, 실제 국가의 무력과 경제권은 마피아들이 쥐고 있으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극도의 빈곤을 면치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현실적(실제적) 작동 원리'에 대해, 카플란은 위와 같이 말하고 있고, 나도 동감한다. 그런 제도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어쩌면 아시아에게 지금의 자기들처럼 환경 오염 기준을 지키라는 유럽의 모습처럼 어떤 현실적인 조건들과 역사적 역학에 대한 이해 없이 현상만을 놓고 보는 이들의 논리일지 모른다. 때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또 '민주주의'에 대한 서구의 요청-그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악'으로 규정하면서-이 하나의 정책이라기보다는 회피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를 치르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국가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크하르트도 말했듯 이 완전한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면 교활함과 힘, 그리고 수년에 걸친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_선거를 치르기는 쉽지만, 어떻게 해서 그 민주주의라는 것을 발명했는지, 그리고 그 도구로서 어떻게 나라를 잘 운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고 있지 않다.
"멕시코의 어느 싸구려 국경 도시를 연상케 하는 베트셰안의 버스터미널 같은 그런 스산한 분위기는 터키에서 가장 서구화되었다는 지역에서조차 느껴보지 못했었다. 그렇다. 사회 경제적 역동성은 때로 추악한 모습을 띠기도 한다. 아름다운 정원과 우아한 말씨는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오랜 전통과 세심한 정성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_이 대목에서는 난 중국을 연상했다. 분명 중국이란 나라는 문화적으로 풍성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표백제 같은 공산주의가 쓸고 간 이후 치덕치덕 싸구려 자본주의의 포장들로 덮어 놓은 모습이란 어떤 비애감마저 들게 한다. 그런 면에서 분명 삶이 '윤택'해 지는 것이란 돈과 크게 연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분명 사람이 살지만 전혀 살냄새 나지 않는 그런 스산함을 떠올리면서, 난 70년 소비에트 연방이 인류에게 한 결과에 대해 생각했다. 유태인계 미국인이면서 이스라엘에서 군복무까지 하기도 했던 저자의 시선처럼 내가 단순히 우파 서구인의 시선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 코뮤니즘에 대한 저자의 부정적인 시선들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공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맑스가 말했던 이론적인 공산주의와 실제 스탈린의 소련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인류의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시도들 안에서 말하자면, 작금의 모습들에 대해선 그다지 어떤 칭찬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국들의 붕괴와 민족의 자결권 및 지역 독립에 대한 욕구는 성가시고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아닐 수 없다. 중앙권력이 와해되면 그 자리엔 흔히 관습과 미신이 대신 들어서곤 한다."
_하면서도 나는 카플란의 이런 발언들을 들으면 어딘가 껄끄러워진다는 것이다. 그가 한 이 이야기는 분명 현상적으로는 맞지만, 그러한 모습들이 그에게는 '성가신' 일이며, 어떤 '관습과 미신'이 횡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인데, 그건 바로 먹잇감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뱉어 놓아야 했던 '제국'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_Cut & Pastes
"T.E. 로렌스, 거트루드 벨, 프레야 스탁 같은 20세기 초의 위대한 여행가들이 왜 이곳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리아의 지형은 결핍의 미를 갖춘 훌륭한 한 편의 시였다.""내가 이 곳(아라비아)에 있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미지의 공간으로 내몰아 자아를 발견하도록 해준 내 옛 조상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 역시 여러 땅들을 방랑해 본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손에 잡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고, 여러 낯선 집들의 객이 되어 본 뒤에야 뿌리를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외스러운 그(아브라함)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내 보잘것없는 혼란은 문제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 무하마드 아사드(레오폴드 바이스), <메카로 가는 길 The Road to Mecca>"제체프는 그의 아파트를 떠나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영혼의 공백은 절대 무한정으로 지속될 순 없습니다. 뭔가 새로운 대안이 나타날 거예요. 지금 우리(불가리아)는 한계적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난 모르겠어요. 때가 되면 사람들도 신은 교회가 아닌 우리 안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요.""
_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미지에 공간'에 대해 쓰고 있는 카플란의 이 잘 정돈되고도 차분하며 무게 있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호기심 잔잔한 안정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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