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모든 것을 버리고 인도로 떠났다'라는 진술은 작금의 출판계에선 너무나도 흔한 카피가 되어버렸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인도와 티벳은 실패한 히피들의 자위를 통해 그렇게 고평가되어 왔지만;
_후지와라 신야가 1967년 그의 스물 세 살 때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1974년까지 인도를 여행한 경험은 담은 이 책에서는 오히려, 어쩐지, 인도(또는, 우리가 지금까지 머릿속에 주입당해 왔던 인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타들어가는 시체를 들여다보며 그가 느낀 것이란 하루의 벌이와 흐르는 땀, 눈과 입 속을 파고드는 모래 먼지 같은, '실제로 실재하는 삶'이며, 그에 반하는 그 어떠한 과장이나 포장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게 부정한다.
"
인도, 티베트에 갔다 와서 신비를 상품으로 파는 것은 일종의 사기죠. 명상이라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신은 언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형식은 믿지 않아요. 좌선하고 말없이 있으면 명상인가하면, 그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명상하는 일이 일상에서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화장하는 것을 이십 일쯤 계속 촬영한 일이 있습니다. 불타오르는 데 가까이 가면 불길이 대단히 뜨겁죠. 나중에 보면 눈썹 같은 데가 오글오글하게 되어 있기도 해요. 광각 렌즈를 가지고 다가가 봅니다. 연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것을 이십 일이나 하면 시체의 냄새가 몸에 스며들어 버리죠. ......사진을 찍는 일과는 관계없이, 저도 모르게 죽음의 냄새가 달라붙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명상이지요. 모든 것이 그렇지만 명상 역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하는 것이 좋아요." - (책 서문의 인터뷰에서 발췌, 아마도
2009년에 재번역된 책에는 이 챕터가 없는 듯하다)
_'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으로써의 인도가 보이지 않는 그의 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보다, 먼지 속에서 '굴러다니는' 초라한 행색의 젊은이이다.
"인도에 오래 있으면 점점 벌레같이 되어집니다. 그곳은 역시 인력이 강한 것 같아요. 인력은 지구상 어디든 똑같겠지만, 무너가 흙의 힘에 강하게 끌어당겨진다고 할까요. 점점 흙에 아주 녹초가 되어 버리게 된달까, 그런 기분입니다. 그런데 티베트 같은 델 가면 하늘이 쭉 빨아들인다고 할까, 퍼뜩 하늘을 보면 하늘이 내게 떨어져 내려오는 기분이 듭니다. 티베트에는 위로 빨아들이는 인력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땅이 빨아들이지요. 양 극단 같은 느낌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티베트로 가면, 물방개처럼 수렁에서 공중으로 날아 오르는 듯한 두 개의 영역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지요." - 위의 인터뷰
_책을 읽으며, '온전히 여행하는 것', 또는 온전한 존재로서 여행하는 것이란 무얼까, 를 계속 묻게 되었다. 68년도와 맏물린 시기의 여행인지라, 그는 많은 히피들을 만나는데, (히피들이 보여주는) '무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는, '자연'에 '형식'을 강요할 때만큼 (여행자로서의) 자기 존재가 초라해지는 때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대체 일본에는 몇 대의 카메라가 있느냐'라고 자신을 찍는 그에게 불평하는 한 히피에게, '아마도 인도에 있는 히피 숫자만큼'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이 대화에서 여행에의 자신감을 잃었다고 쓴 걸 보면, 그 때 그는 그저 궁시렁댔을뿐이었던 것 같지만, 지금 와서 곱씹어보면 나는 이 말이 굉장한 일갈이었다고 생각한다. 히피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어떤 대체 문화가 필요했던 것이고, 모든 이가 당장의 실제적 삶이 급한 땅에서 이런 모습 만큼 가증스러운 일도 없는 것이다. 인도인들에게 밭을 갈고 젖을 주는 소가 있었던 것처럼 카메라는 젊은 후지와라 신야에게 일종의 생산 수단이었던 것이고 (재미있는 건, 사진을 팔면 여행 경비라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에 그는 형의 카메라를 빌려 갔는데, 처음엔 셔터가 어디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초라해지더라도 어떻게든 삶을 지속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구라가 통하지 않는 곳이 인도이고, 그 안에서 그는 비로소 (낭만적 의미를 완전히 거세한 뉘앙스로써의) '내 생명이 존재하는 자리'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여행'을 계속했다...... 다분히 어리석은 여행이었다. 때때로 그것은 익살스러운 보행이기조차 했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나 자신이 익혀 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플 정도로 못났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황량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언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좋은 나쁘든 모든 것이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실제를 찍었다..... 그리고 내 몸으로 그것을 실천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