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할 권리
김연수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은 내게 되려 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_다소 무겁고도 진중한 <청춘의 문장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작가의 타지의 경험들을 담은 이 책은 비교적 경쾌하고도 쉽게 읽힌다.
more..
_그가 일본, 연변, 독일, 버클리 등지에서 겼었던 일들로부터 경계란 무엇인가, 그리고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문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키를 똑같이 좋아하는 독일인과 젊은 시절의 김연수로부터 보편적인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이라기 보다는 그저 인종만 아시아인인)인 작가로부터 문학을 민족이 가르는지, 민족을 문학이 가르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마도 비교적 가벼운 산문집인 이 책에서 가장 주목 받을만한 부분은 마지막 챕터에서 이상이 죽었던 도쿄의 한 거리를 찾으며, 이상 그리고 김수영과 박인환을 비교하며 '경계로까지 자기 자신을 밀고 나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어디에서 진정한 문학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_이상은 새로운 문학이 가능한 곳으로 도쿄를 꼽았고, 그 곳에서도 그는 다시 파리로 갈 꿈을 꿨지만, 결국 현실에 대한 실망과 더 지독한 불가능들만 남아서는 도쿄의 작은 골방에서 그는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아프롱' 같은 이국적인 언어들로 타지의 낭만을 노래했던 박인환은 그 당시 한국인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아 실제로 미국을 가 보게 되지만 오히려 그는 어떤 존재의 한계가 주는 체념만을 가득 담아 돌아오게 된다. '시크'한 시어들만 조합해서 멋드러진 글을 쓰다가, 결국 '실제 세계', 말하자면 실제 그 낭만이 넘쳐야 할 타지(미국)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허구라는 것만 확인한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온 몸으로 온 몸을 밀어'내지 못했던 자기 자신, 문학을 '스타일'로만 대할 때의 어떤 진정성의 부재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 캄캄한 방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어둠속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너, 그런데 거기 왜 그렇고 앉아 있니? 너, 거기서 지금 뭐 하니?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그 목소리는 그해 9월에 옌지를 떠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내 귀에다가 대고 그딴 식으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오면 꼼짝도 못한다.
_다만 아쉬운 것은, 김연수는 주로 어떤 타지에서 짧게건 길게건 '정주'를 했을 뿐이지,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하는, 어떤 속도의 관성에 자신을 맡긴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분명 어떤 거처 없는 여정, 끊임 없는 이동이란 어깨를 짓누르는 짐, 지독한 그리움, 젊젊 닳아가는 자신(옷, 몸, 치약 모두 점점 닳아져가는) 같은, 얼마간이라도 정주할 수 있는 삶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고, 때문에 감정 흐름 또한 많이 다른데, 그런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해외 체류들이란 어떤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그 지역에 관련한 글을 쓰거나, 과거의 역사적 흔적을 확인하는 등, 대개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인데, 때문에 이 책은 여행에 대하여, 그리고 문학이 가능한 경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직접 겪은 어떤 '경계'는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덧 없는 것들만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해도 꿈은 늘 새롭다.
le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