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섬의 가능성
미셸 우엘벡
_그의 세상관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에서 동의한다. 인간 종이 이 시대에 목도하는 것은 멸종뿐이라는 걸. 너무나 아포칼립스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물질적 부를 이룬 국가들에서 인구수가 감소하고, 그러면서도 자살률은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이 현대에, 아니 인간 종에 기댈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종교와 예술, 사랑과 Audi까지 개개인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숱한 체계들이 있지만 어쩌면 그것들도 모두 인간이란 한 동물 종의 추구일런지 모른다; 마치 한 치타가 자기 종에서 최고 속도를 경신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진보를 위해서 인간 육체를 버리고 광합성을 할 수 있으며 감정 동요를 갖지 않는 신인류로 진화를 한다.
_진화의 성공 이후 이천년에 걸친 자기 복제가 계속되었음에도 존재는 시원적 문제에 천착하게 된다; 사랑. 다시 한 번 아리스토텔레스의 <향연>이 등장하고, 영원이 보장 받은 존재인 신인류는 컴파운드를 벗어나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그가 다다른 곳은 하루 종일 기온과 풍광이 똑 같은, 어떤 자궁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해설에서 역자는 그 곳에의 편안함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필요한 무엇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읽기론 그것은 어떤 완전한 포기이다; 라엘리언 무브먼트를 상징하는 엘로힘교에서 그들은 고통을 벗어나 영생을 얻기 위해 인간 복제를 성공하고, 인간의 몸을 버린다. 그러나 그 모든 과업을 완수한 후 2천년이 지났어도, 신인류에게조차 풀리지 않는 의문은 존재하는 것이다. "영원한 잠재성으로 진동하는 그 환한 무(無)속으로 녹아들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낀, 사랑을 실패하고 생의 자발적 마감을 직면하는 주인공이지만, 그로써 이룬 (생물학적) 영생이란 것이 그 어떤 근원적 문제를 절대 풀어주진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소설 족 엘로힘교에 대한 지저분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우엘벡은 라엘리안들의 명예 사제가 되었다 한다)
_어이없게도, 몰랐는데, 우엘벡은 이 이야기를 직접 영화로 만들었다. 마치 소설 속 코메디언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주인공 다니엘처럼. 소설의 원작가가 그 이야기의 영화 감독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꼭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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