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를 기만하고 괴롭혔던가? 그 대답은 - 멍청히 팔짱을 끼고 있기가 너무나 따분해서 약간 재주를 부려본 것뿐이다, 라고 나올 것이다. 사실 그렇다. 당신들도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해 보라. 사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니.
_A to B가, 합리성이, 과연 인간에게 가능하기나 한 말인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든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하고 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대되더라도 하고 싶은 걸 어쩌겠는가...(중략)...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의욕, 아무리 엉뚱한 것일지라도 하여튼 자기 자신의 변덕, 미치광이 같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여튼 자기 자신의 공상 -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유익한 이익이다. 이것만은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이익이며 또 이것 때문에 일체의 이론이 박살나 버리는 것이다...(중략)...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독자적인 자유로운 의욕뿐이다. 이 자유로운 의욕의 대가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리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참으로 이 의욕만큼 처치 곤란한 것도 다시 없을 것이다.
_포디즘이 실패한 이유.
설사 인간이 정말로 피아노의 건반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자연과학으로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뭔가 이상야릇한 일을 저지를 것이다. 요컨대 단순히 배은망덕의 습성 때문에 자기를 주장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만약에 적당한 방법이 없을 때는, 파괴와 혼돈과 온갖 고통을 궁리해 내서라도 하여튼 자아를 주장할 것이다. 그 때 인간은 온 세계에 저주를 뿌릴 것이다. 저주라는 건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능력이므로(이것이야말로 특권이자,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 주는 특징이다), 아마 이 저주 하나만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즉, 자기는 피아노의 건반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것이다.
_종교, 체계화된systematic 인간의 저주 능력.
사실 온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지상의 목적이란 것은, 모두가 이 목적 획득의 끊임없는 과정, 즉 생활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목적 자체 속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목적이란 말할 것도 없이, 2X2는 4이며 공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러분, 2X2는 4는 이미 생활이 아니고 죽음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_전쟁이 멈추고, 기아가 없어지고, 모든 이들이 부자가 된다면? 인간에게 있어 '목적'이 갖는 공허함, 로또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이유이다.
나는 확신한다 - 인간은 진짜 고통을, 다시 말해서 파괴와 혼돈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고. 고통 - 이것이야말로 자의식의 유일한 원인인 것이다. 나는 이 수기의 첫머리에서 자의식은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러나 인간이 그 불행을 사랑하여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자의식이란 2x2는 4 따위보다는 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2x2는 4 다음엔 두말할 것 없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질뿐더러 더 이상 알아야 할 것도 없다. 그때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자기의 오감을 틀어막고 명상에 잠기는 것밖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의식을 지니고 있으면, 결과적으론 역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지기는 해도, 하다 못해 이따금 자기 자신을 때릴 수는 있을 것이고, 따라서 다소는 제정신이 들 게 아닌가. 좀 퇴보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_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병이 고질화되어, 진짜 '산 생활'을 마치 무슨 힘든 노동이나 되는 것처럼 느끼며, 차라리 '소설식인' 생활 쪽이 좋다고 모두들 속으로 생각하게끔 되어버린 것이다.
_우리는 이제 완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 삶은 재미없고 지루하며 빡세다. TV와 영화의 삶에는 '드라마'가있고,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실제 삶보다 '우월'하다, 고 생각을, 이제는 모두가, 한다.
시험삼아 우리에게도 좀 독립성을 부여하고, 우리 손에서 밧줄을 풀어 활동 범위를 넓혀줘 보라. 그렇게 하면 우리는 곧...... 그전처럼 다시 감독해 주십사, 하고 애원할 것임이 틀림없다. 아마 당신들은 나의 이 말에 화를 내어 발을 구르며 호통을 칠 것이다 - "너 자신의 얘기만 해라. 너 자신의 비참한 지하생활 얘기만 하면 될 것이지 어째서 '우리는 모두들'이라고 남까지 끌고 들어가느냐?"
_누구에게 제대로 말 못하는, 21세기의 모든 히키코모리 저리가라할만큼, 찌질한 주인공임에도, 너희 그 잘난 세상의 모든 '제대로 된 정신'이 박힌 인간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당차게 말하며 '수기'를 맺는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는 '모두들'이란 말을 변명의 도구로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 자신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나는 일생 동안 줄곧 당신들이 반도 추구할 용기가 없었던 것을 극단까지 추구한 것뿐이다. 당신들은 자신의 소심함을 분별력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그것으로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들에 비하면 오히려 내가 몇 배나 더 생기 있다고 할 수 있다. 눈을 좀더 크게 뜨고 잘 보라! 사실 지금 어디에 살아서 생활하는 것이 있는가? 그 살아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뭐라고 불리우고 있는가? 그것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잖은가? 가령 우리한테서 책(그가 이 글을 쓰던 시대에는 책이었겠지만, 지금은 좀 다른 것들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TV, 컴퓨터, dmb, 핸드폰...)이라는 걸 모조리 빼앗아보라. 우리는 곧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디에서 자신을 맞춰야 할지, 무엇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할지, 모든 것이 캄캄해져 버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조차 - '자기 자신'의 육체와 피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조차 싫증이 나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로 생각하면서, 뭔가 여태까지 없었던 일반적인 인간이 되려고 열심히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테면 생명 없는 사산아, 그것도 살아 있는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것이 아닌, 몇 대에 걸친 사산아인 것이다.
_<Facto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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