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낯선 곳을 무작정 배회하는 일을 마치 어떤 의례처럼, 비타민처럼, 스트레칭처럼, 중독처럼 해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 배회가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 어쩔 수 없이 헤매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의도적으로 어떤 지역을 정해 놓고 그 곳에 도착한 뒤 발이 이끄는대로 걷는 행위를 어떤 강박처럼 정기적으로 행한다. 계획된 강박적 배회라, 참으로 아이러닉하고도 뒤틀린 행위.
단순히 혼자이기 때문은 아니라, 심지어 요즘처럼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나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거짓말까지 둘러대며 시간을 번 뒤 기어코 혼자서 길을 나선다는 것이다. 이 습관 또는 강박은 아마도 서울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망원동과 아현동, 마포역 주변, 북촌 등지를 강박적으로 배회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그 의례들과 지금의 배회가 크게 다르지가 않다. 왜인지는 몰라도, 서울의 친구들, 만남들, 관계들 등등의 여러 기억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만, 낯선 골목을 무작정 걷던 그 순간 순간의 장면 장면들은 마치 오 분 전의 기억처럼 분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내 안에 존재한다.
alley alley를 block block을 걷는다, Nujabes를 들으며, 작은 분식점, 세탁소, 금은방을 지난다. 사람들의 얼굴이 휙휙 지나간다. 저 무표정한 얼굴, 기계적인 걸음에서 나는 티끌 만큼의 주저함이나 불안, 기대나 사랑의 감정을 발굴하려고 노력해본다. 모든 것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에서 사소한 삶의 동요를 발견하려 애를 쓴다. 그러다보면, 그렇게 수십 수백 명의 무표정한 얼굴을 살피며 하염 없이 걷다 보면, 가끔씩, 서러워진다. 울컥한다. 북받친다. 그러면 나는 가득 차 오른 두 눈을 감추기 위해, 숨을 몰아쉬며, 더욱 더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2007년 1월 태국이 기억난다; 언제나처럼, 방콕을 헤매다 시암스퀘어 근처 고가도로 아래의 황량하고도 어두컴컴한 길을 지날 때. 그 적막한 보도에는 과일을 썰어 작은 비닐 봉지에 담아 파는, 작은 리어카가 하나 덩그러니 있었고, 그 리어카를 지키던 이십대 초반이나 되었음직한 남자의 표정;
공허한 표정이라고 하기엔 어떤 사념의 그림자가 드리운, 지루한 표정이라고 하기엔 진지한 어둠을 응시하는 듯한, 슬픈 표정이라고 하기엔 일상의 지속 속에 슬플 꺼리 자체가 없는, 어떤 독립적이고도 중립적인 표정. 하루 종일 걷기만 하다가 해가 질 무렵 그 표정을 보았던 난,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처지 비관도 아니고 대상에 대한 동정도 아니며 쌓여있는 그리움의 급작스러운 연소 조차 아니다. 그건 무언가 동물적인 슬픔이다. 전혀 초월적이지 않은, 순전히 물질적인 슬픔이다. 눈을 반 쯤 감은 채 해가 지는 곳을 바라보며 의미 없는 응시를 수 시간이나 해 대는 초원 또는 사막에 사는 동물들의 눈에서나 찾을 수 있는, 서늘하고도 차분한 낙담의 느낌, 또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영겁에 대한 향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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