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geek, nerd, 애플빠, 맥빠, 오빠, 뭐라고 불러도 다 좋다, 아이폰으로 인해 바뀐 삶의 무늬들을 기록해본다:
아침,지난 밤에 골라놓은 아이폰의 음악 볼륨이 점점 커지는 것과 함께 잠을 깬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는 싫고 잠을 좀 깨고는 싶어, 아이폰으로 그 날의 날씨와 뉴스 등을 살핀다. 밥을 차려놓고, 아이폰을 옆에 두고는 팟캐스트나 뉴스를 본다.외출 준비를 하며, 아이폰으로 집 앞 정류장에 곧 올 버스의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시간을 맞춰 나가며, 아이폰에 꼽은 이어폰/마이크를 귀에 꼽는다. 음악을 튼다. 제8극장이 듣고 싶다. 추운 겨울이라 아이폰을 꺼내긴 귀찮고, 이어폰의 버튼을 길게 눌러 음성 인식 모드로 전환한다. "재생 제 팔 극 장"이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세 번의 시도만에, "제팔극장 재생중"이라는 말과 함께 노래가 나온다.버스를 탄다. 음악을 들으며 Facebook의 새로운 포스트들을 보다가, 전화가 온다-음악 볼륨이 줄면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이어폰의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는다. 통화를 마치면, 아까 듣던 음악 볼륨이 다시 커지며 재생된다.음악을 바꿔 "Blue Scholars"를 튼다. 이 힙합 듀오의 끊임없이 뱉어내는 랩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었는데, MusicID 앱은 지금 재생중인 곡을 인식하고 가사를 바로 찾아내준다.종로서 일을 본 뒤,어디 가서 커피를 좀 마시고 싶다. 발에 치이던게 커피 프랜차이즈인데 오늘은 좀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늘 오는 곳이지만, 명동/시청/남대문은 어딘가 가까우면서 멀리 떨어진 섬 같은 느낌이다. 감을 믿고 한참 걷다가는 늘 길을 잃는 곳이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켠다. 일단 GPS로 현위치로 이동한다. 그리고 검색창에 '커피빈'을 친다. 이 주변의 가게들에 콩콩콩콩 핀이 박힌다.아, 친구에게 물어볼 게 있다. 이어폰 버튼을 길게 누르면 음악이 꺼지고 음성 인식 모드가 된다. "통화 써커"라고 또박또박 말하자, "써커, 통화, 휴대 전화"하며 전화가 간다.광교를 조금 넘어 청계천 뷰가 좋은 커피빈에 자리를 잡다. 폰을 손에서 좀 놓고 이제 책을 좀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정규가 준 Oracle Bones를 편다. 중국의 '안양'이라는 곳에서 옛날 상나라 시대 유적을 발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안양이 어디야, 라고 하며 아이폰을 꺼내 구글 어스로 찾는다. 한 챕터의 제목이 중국어로 되어있다. 무슨 뜻이야, 라며 중국어 사전에 손가락으로 한자를 그대로 배껴 써 필기인식을 시킨다.책을 한참 보다 고개들어 하늘보니 지는 해가 살그럽다. Tripod 앱으로 사진을 찍는다-손의 떨림이 최소화될 때 자동으로 사진이 찍힌다. 찍은 사진을 로모 사진 효과를 주는 프로그램으로 빈티지스럽게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린다.저녁은 지난 번에 갔던 뚝배기집이 좋겠다.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애매하다. 상호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다음 지도 앱에서 '스트릿뷰'로 그 근방 지역의 실제 사진을 본다. 아이폰을 왼쪽으로 돌리면 그 장소의 왼 편이 보인다. 둘러보니까, 그 집이 있다.가려는 채비를 하려는데, 카페에 포르투갈어로 된 매력적인 노래가 흐른다. Shazam 앱을 켜 잠시 동안 아이폰이 노래를 듣게 한다. 찾아낸 건, 한 브라질 가수.집으로 가는 버스,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이 추운 겨울에 언제 버스가 올지 모르겠다.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정류장을 검색하고, 그 정류장에 곧 올 버스들을 확인한다.버스에서 웹툰을 보다가, 지난 번에 내게 일을 맡겼던 곳에서 급하게 간단한 서치를 부탁한다는 메일이 왔다. 구글링을 해, 바로 답멜을 보낸다.집이다. 잠자리에 누워, 아이폰으로 MBC 라디오를 튼다.
...라는 게, 무늬만 보면, 내 일상의 꽤 큰 변화, 또는 의식의 확장이라고까지 생각되면서도, 반대로 어떤 완전한 굴레, 내 세상은 3인치 스크린과 엄지 두 개가 전부가 아닐까 하는 복잡한 마음,
하지만 난 정말로 단순한 세상에서 완전한 원시시대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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